며칠 전, 경산 남산골에 있는 사위 작업장엘 잠깐 들렀다. 가는 길목엔 온통 봄꽃들의 향연이라도 벌여놓은 듯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도로변이랑 나지막한 산자락엔 복사꽃이 분홍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아름다웠고 작업실 뜰 귀퉁이엔 노란 민들레랑 보라색 흰색 제비꽃들이 뾰족이 얼굴을 내민 풍경들이 정겨웠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여고시절, 무작정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걷다 비에 흠뻑 젖어 들어가면 외할머니는 핀잔을 주셨다. 세월의 흐름에 떠밀려 곧 '지공'(지하철 공짜로 타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 될 나이에 와 서니 그것도 센치한 사춘기시절의 추억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요즘은 비 오는 날 걱정이 더 많아졌다. 황사와 함께 내리는 비를 손자 손녀들이 맞아 감기는 걸리지 않을까, 입마개는 하고 갔을까, 나 또한 외출하기 전 발코니에 서 창밖 하늘을 몇 번이나 쳐다보며 상비용 우산을 가방에 넣고 나간다.
요즈음은 사계절의 비에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저께도 바람이 세차게 부는 황사비가 내렸는데 이 비를 봄비라고 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봄꽃들은 봄비 탓하지 않고 어디서든 제 모습을 보이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자연의 섭리 앞에 감사하며 이봄 '이은하의 봄비'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때처럼 봄비 맞으며 걷고 싶다.
박명숙(대구시 동구 신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