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하나로 일궈낸 '주방 보조'…정신지체장애 김준휘씨

입력 2007-04-20 09:30:43

"가능성이 보인다고 합니다. 어쩌면 앞으로 주방에서 조리용 칼과 불을 다 사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18일 오후 대구 달서구 '아웃백 죽전점' 2층 주방. 불 앞에 선 주방장과 날렵한 몸짓으로 재료를 제공하는 보조가 명쾌한 화음을 내며 음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한 치도 틀리지 않은 정량의 토핑을 파스타 위에 올린 뒤 이를 주방장에게 넘기는 보조의 손놀림엔 신바람이 묻어났다. 총명한 눈빛에 야무진 손놀림, 단번에 음식 재료의 무게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눈을 가진 그는 이곳의 베테랑 주방 보조인 김준휘(29) 씨. 직원 중 두 번째로 많은 시급을 받는 그는 2년 6개월째 이곳의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곳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또 있었다.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신지체장애 2급이지만 일반인을 능가하는 실력을 맘껏 뽐내고 있다. 그가 가능성을 인정받기까지 참 힘든 길을 걸어야 했다. 외국계 외식 업체인 탓에 조리법과 주문 방법들이 영문 이니셜로 돼 있어 이를 아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불과 칼을 다루는 위험한 작업이 많은데다 먹을거리를 다루는 일이라 더욱 더 조심해야 해 장애를 가진 그에겐 넘기 힘든 산이었다. 무엇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준휘 씨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악착같이 영문 이니셜과 가르쳐 주는 조리법을 순서대로 모조리 외웠다. 또 손재주가 있어 지금껏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이런 노력 끝에 그는 현재 신참 보조들의 틀린 조리법을 감시하는 '사감'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재료의 정량을 맞추지 않거나 순서가 틀리면 이를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전봉길(33) 점주는 준휘 씨를 가게의 '보배'라고 부른다.

준휘 씨는 이런 전 씨를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고맙다. 언어 장애까지 가진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믿고 일을 맡겨줬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준휘 씨는 전 씨에게 '웃음'을 배웠다. 잘한다고 칭찬하며 자신을 북돋아주면 절로 웃음으로 보답하게 됐다고 했다.

준휘 씨는 전 씨의 신뢰가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오게 했다고 믿고 있다. 자동차 및 전등 공장 등 숱한 공장에서 단순 업무를 하며 겪었던 시련을 이곳에서 이겨내고 있었다. 전 씨는 "성격과 능력을 정확히 파악해 일을 맡기면 장애인이 일반인보다 오히려 더 높은 성과를 보인다는 것을 준휘 씨를 통해서 알게 됐다."며 "작은 바람이지만 준휘 씨를 통해 많은 장애우들이 힘을 내고 더 많이 사회로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준휘 씨는 "일이 너무 좋습니다. 일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다른 장애우들도 저처럼 일했으면 좋겠습니다."며 어눌한 말을 이어갔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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