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내가 죽거들랑 하얀 손수건이나/ 열댓 장 넣어주오/ 가다가 가다가 눈물이 흐르면/ 그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닦으며 가리라/...'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11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김석수(54·요셉·포항시 남구 대잠동) 씨. 손가락 하나 들 수 없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그가 책을 펴냈다. '아직도 못다한 말은'(도서출판 아르코). 이 책은 인공호흡기로만 숨을 쉴 수 있는 김 씨가 온몸으로 지은 시와 에세이를 묶은 것이다.
"메모~!" 가느다란 그의 목소리에 아내 조문자(마리아·50) 씨가 귀를 대고 받아적었다. 고통과 그리움 그리고 아쉬움의 메시지들. 들이쉰 산소가 잉크가 되고, 텅 빈 천장이 원고지가 되어 그렇게 토해낸 한 마디가 글로 옮겨지고 시가 되었다.
"눈물이 나와 차마 받아적을 수 없었던 때도 많았습니다." 아내의 눈물까지 녹아든 책 '아직도 못다한 말은'은 지난해 펴낸 자서전 '물천리의 노래'에 이은 두 번째 작품집. 화가 골롬바 수녀의 그림과 사진작가 오경숙 씨의 사진 그리고 김 씨가 건강하던 시절에 남긴 서예와 분재작품도 함께 실었다.
1973년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한 김 씨는 1996년 7월 경부고속국도에서 빗길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경추손상으로 전신마비가 왔다. 대전 해군본부에 근무하며 1주일에 한번 포항의 가족을 보고 가던 길이었다. 수술을 했지만 사흘 후 수술후유증으로 호흡까지 마비됐다.
그 후 줄곧 중환자실에 있다가 "집에 가고 싶다"는 말에 따라 몇 년 전부터 집 안방에 병상을 꾸몄다. 오랜 세월 병간호에도 아내는 "그때 훌쩍 떠나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어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한다. 35년 전 교회에서 만난 이후 하루같이 고마운 시간들이다.
결혼을 하고 두 딸을 키우던 시절이 꿈같다. 김 씨는 원래 시를 잘썼다. 절절한 사랑이 담긴 연애편지를 보내기도 했고, 간혹 전우신문에 글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엄습해오는 고통과 함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사무칠 뿐이다.
그래서 5년 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눈빛만 보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 지 알 수 있어요. 만약 내가 아파 누웠어도 남편은 똑같이 했을 겁니다." 아내가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이젠 진통제조차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이 나으면 가족과 설악산 여행가자."던 말은 '후일에, 아주 먼 후일에 당신이 저를 찾아와 주신다면 당신을 업으러 마중 가겠소'라는 가슴 아픈 시로 바뀌었다. 사고 전 군종신부로 만난 김준우(칠곡가톨릭병원 병원장) 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믿음이 성서 속 마리아와 요셉이었다."며 "여기의 요셉과 마리아의 사연이 그것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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