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있는 길)다산초당과 천일각-정약용의 '목민심서'

입력 2007-04-17 07:25:39

강진만(구강포)을 왼편에 두고 버스는 달린다. 유명한 청자 도예지가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아이들에게 지나가면서 소개만 했다. 귤동마을을 옆으로 돌아 다산유물기념관에 도착했다. 제법 우람한 건물에서 다산의 풍모가 느껴진다. 다산유물기념관은 몇 년 전에 올 때에는 없었던 건물이다. 오히려 지난날의 고즈넉한 풍경이 퇴색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보여주기 위한 건물을 자꾸 짓는 것은 어쩌면 본질적인 풍경을 훼손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전시된 자료들을 대강 훑어보고 다산초당으로 올랐다. 수면의 부족과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아이들은 무척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다산초당까지의 가파른 산길을 모두 오르고 있었다. 다산은 귀양살이 8년째 되던 1808년(순조8) 봄, 만덕산 귤동마을에 터 잡고 살던 해남 윤씨들의 배려로 다산초당(茶山草堂)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일찍 돌아가신 선생님의 모친이 공재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손녀이고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증손이니 귤동마을 해남 윤씨 집안은 선생님의 외가 친척들이다. 이곳에서 유배가 풀릴 때까지(1808∼1818) 본격적인 학문탐구와 , , 등 방대한 저술활동이 이루어졌다.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백성을 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자의 배움은 자신의 수양이 반이고, 목민이 반인 것이다. 성현이 간 뒤로 세월은 오래되고 그 말은 사라져서 성현의 도(道)는 없어지게 되었다. 지금의 목민관(牧民官)들은 오직 사리사욕을 취하기에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을 모른다. 그렇게 되니 백성들은 피폐하고 곤궁하며 병에 걸려 서로 줄을 지어 쓰러져서 구렁을 메우건만 목민관이란 자는 여기에서 좋은 옷과 맛좋은 음식으로 제 자신만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 정약용, '목민심서 자서' 부분

이러한 다산의 정신은 현재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할 교훈이다. 백성이 없는 곳에는 지배층도 있을 수 없다. 사적 제107호인 다산 초당은 강진만(구강포)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18년의 유배 생활 가운데 10년을 지냈던 곳으로 다산의 체취가 그대로 간직된 다산4경을 볼 수 있다. 다산4경은 정석, 약천, 다조, 연지석가산이다. 그늘이 내려있는 다산초당 마루에 앉아 우리는 땀을 식혔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멍하니 추사 김정희의 글자로 집자된 '다산초당(茶山草堂)'이라는 현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정석(丁石)'이란 글자가 새겨진 바위, 약천, 다조를 거쳐 '보정산방(寶丁山房)'과 '다산동암(茶山東庵)'이란 현판이 새겨진 동암을 거쳐 천일각에 올랐다. 그렇다. 우린 이것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것인지도 모른다. 눈 앞에 펼쳐진 구강포의 아름다움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다산'은 원래 차나무가 많은 만덕산의 별칭인데, 차를 유달리 좋아했던 정약용은 만덕산 자락의 초당에 머물면서 자신의 호를 다산이라 했다. 하지만 기약 없는 귀양살이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일 때마다 다산은 천일각에 올라 구강포를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거나, 천일각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 동백숲을 거닐곤 했을 것이다. 구강포의 아름다움은 지친 몸을 이끌고 땀을 흘리면서 초당 고갯길을 올라온 아이들에게 더할 수 없는 선물이었다. 천일각에 앉아 오랫동안 구강포를 바라보았다. 다산이 그런 것처럼 나직하게 다산의 시를 읊조려보았다.

'우두봉 아래 조그마한 선방에는 / 쓸쓸하게 대나무가 낮은 담 위로 솟았구나

바다의 바람에 밀리는 조수는 산밑 절벽에 이어지고 / 읍내의 연기는 겹겹 산줄기에 깔렸네

둥그런 나물 바구니 죽 끓이는 중 곁에 있고 / 볼품없는 책상자는 나그네의 여장이라

어느 곳 청산인들 살면 못 살리 / 한림원 벼슬하던 꿈 이제는 아득해라'

- 정약용, 전문

는 한 마디로 얘기하면 지방에 있는 관리들이 백성을 다스리는 데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만든 지침서이다. 이는 정약용 자신의 관리 생활 경험, 그리고 18년 유배 생활 동안의 체험과 분석, 그리고 중국과 조선의 방대한 역사적 자료에 근거하여 저술한 것이다. 여기에는 지방 수령이 임명을 받는 과정에서부터, 부임하여 각 분야의 행정을 담당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아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각 지방의 수령이 현행 법 제도 아래에서 최선을 다하면 실행 가능한 각종 정책도 제시되어 있다. 정약용은 서문의 마지막에, 왜 책의 이름을 라고 하였는가에 대해,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유배중인 몸이라 몸소 실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심서라 지었음을 밝히고 있다. 다소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요즘 공무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정신적인 덕목이 담겨 있다. 그 중심은 역시 민본주의이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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