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널 지켜낼 수 있다고 믿었어. 세상에 무엇 하나 두려울 것 없다며 날 믿고 따라오라고 했지. 상처 많은 당신을 내 품으로 보살펴 주고 싶었어.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무능한 놈일지라도 당신 앞에서만은 믿음직한 남편이자 희망이길 바랐어. 부모 사랑 한번 받지 못한 그 설움을 서로 쓰다듬으며 의지하고 함께 극복하자고 다짐했었는데···. 미안해.
간절했던 우리의 꿈이 산산조각 나버리는 걸까. 진행이 더뎠던 내 근육병이 날이 갈수록 빠르게 숨통을 조여오는 것을 느껴. 당신도 가슴 통증을 종잡을 수 없다고 했지? 풍족하게 살지는 못해도 젖먹이 민호 클 때까지만 함께 하자던 약속이 거짓말이 돼 버린 것 같아 미안해.
우리의 박복한 팔자를 닮은 이 어린 녀석을 어떡해야 할까. 우리에게 찾아온 생명이 또다시 버려진다는 현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네. 민호가 우리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는 나이까지만 날 살려달라고 하면 큰 욕심일까. 훗날 민호 꿈에라도 나타나 위로해주고 싶은데 그때 민호가 날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 민호에게 꼭 전하고 싶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떠나지만 정말 사랑했다고,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
저는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스물 한 살의 가장(家長)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굳어져 죽게 되는 병인데 아직 치료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병을 알게 된 것은 13세 무렵인데 걸을 수가 없어서 학교를 갈 수 없었지요. 중학교는 가지 못했습니다. 학교까지 데려다 줄 사람이 없었거든요. 부모님은 농사일에 늘 바빴고 저에게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지요. 3년 뒤, 장애인 보호시설로 가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에 무작정 대구로 떠나왔습니다. 시설에서 공부한 지 1년이 되던 날, 중학교 검정고시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제 아내를 만났습니다. 공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돈을 벌었던 아내는 심장판막증과 B형간염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야 했지요. 아내는 회사를 나와 제가 있던 장애인 보호시설로 입소하게 됐고 그날이 제 합격날이었습니다. 쏟아질 것만 같았던 그녀의 눈망울과 밝은 미소는 곧 제 삶의 전부가 됐고 수심 가득했던 그녀의 얼굴에서도 밝은 표정이 감돌기 시작했지요. 우리는 그렇게 사랑했고 지난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 걸까요. 민호가 태어난 뒤 제 병세가 갑작스럽게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휠체어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신세. 제 키가 180cm인데 몸무게가 28kg밖에 나가지 않게 됐지요. 두려웠습니다. 우리 부부는 시설을 나와 부랑자 보호 쉼터로 오게 됐고 저의 몹쓸병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자리에서 목을 매 죽고 싶습니다.
10일 대구 시내의 한 쉼터에서 만난 배철민(가명·21) 씨는 아내(19)가 9개월 된 아들 민호에게 분유를 먹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큰 욕심 없다고 했다. 단, 남편이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병원에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눈 감는 남편을 볼 수 없다며 울먹였다. 심장판막증과 B형간염 따위는 치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쉼터에서 생활한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권자도 될 수 없었던 그들은 아들이 유전됐는지 여부를 검사할 돈도 없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경선 일정 완주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가 지도자급'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