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코너)공무원 퇴출제도 논란

입력 2007-04-10 07:30:18

전반적 여론은 공감…일회성 이벤트 우려도

'철밥통'으로 불리던 공무원들에게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의 칼날이 닥친 것인가. 울산에서 처음 시작된 지방공무원 퇴출 제도가 서울, 부산, 대구 등으로 번지면서 중앙 정부에까지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공직사회에 칼바람이 분 건 1980년대와 90년대에 이어 세 번째지만 이번에는 지방 하위직에서부터 시작돼 장기적인 인사 시스템으로 발전하려는 조짐이 보인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공무원 퇴출 제도에 대해 전반적인 여론은 찬성하는 쪽이지만 추진 방법이나 대상자 선정 등 세부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논란이 엄청나다. 자칫 제도의 도입 취지마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 공무원 노조조차 인정하는 필요성

구조조정 논의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공무원들의 근무 행태는 국민들에게 충격을 줄 정도였다. 단순히 복지부동하는 정도가 아니라 범죄적인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에 여론은 싸늘했다. 공무원 노조조차 불성실 공무원이 자성하고 공직사회에 경각심을 조성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점에서 제도의 취지에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다.

사설이나 칼럼에 나타난 비판은 따가웠다. 개인에 대한 처벌은 물론 관리 책임을 맡은 상급자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는 주장도 높았다. '전체 공직사회를 욕되게 하고 국민의 세금을 축낸 이런 공무원들이 잘리지 않고 자리를 보전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상급자나 감사부서는 대체 뭘 했는가. 나주의 경우 동료 직원이 상급자에게 인사 조치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통속이나 다름없다. 이들을 방치한 간부나 기관에 대해서도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신문 사설)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본연의 업무와 자세를 들어 나무라는 목소리는 더욱 준엄하다. '공무원에게는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공무원을 공복이라 한다. 그 다음에 직급과 자리에 맡는 실력을 갖춰야 제대로 된 업무추진이나 정책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실력을 갖추지도, 공복정신도 없다면 공무원으로서 더 이상 자격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신문 사설)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과거에도 여러 번 공직자들의 근무 자세를 바로 잡기 위한 공직사회개혁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공무원들은 복지부동 복지안동으로 일관했고 시간이 흐르면 흐지부지되고 말아 결국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일회성 바람만 피하면 된다는 의식이 뿌리깊게 박히게 됐다. 구호성, 일회성이 아닌 엄격한 기준과 시스템을 통한 공무원의 퇴출만이 공직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또한 질 높은 공공서비스가 이 사회에 정착될 것이다.'(인터넷 칼럼)

▨ 작은 정부론과의 상관관계

세계 어느 정권이든 큰 정부, 더 많은 공무원을 대놓고 주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경제공황이나 전쟁 등 특정 시가 외에는 작은 정부를 앞세운 게 보통이다. 현 정부 역시 정부의 기능을 확대하고 더 많은 공무원을 뽑은 데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공무원이 4만 8천여 명 늘었고, 인건비는 5조 원이나 불었고, 그럼에도 정부 행정효율은 세계 31위에서 47위로 추락했다는 점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공무원의 수는 해야 할 일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일정한 비율로 증가한다는 파킨슨의 법칙은 예외 없는 법칙인가.

무능·비리 공무원 퇴출제도는 이 논란에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을 일삼는 공무원이 양산되는 건 불요불급한 공무원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또한 민간부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철저한 신분보장, 잘못을 보고도 눈감아 주는 빗나간 동료의식과 온정주의 탓이다. 모범적인 고용주여야 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무능, 부패 공무원은 '큰 정부'의 그늘에서 독버섯처럼 기생한다.'(신문 사설)

그렇다면 작은 정부라고 무조건 구조조정을 앞세우는 것일까. '작은 정부의 의미는 단순히 공무원 규모 축소를 뜻하는 게 아니다. 민간부문에 대한 개입 축소와 규제 완화를 통해 공공조직의 비능률과 비효율을 개선한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 충실한다면 업무의 민영화 혹은 기구조정, 하부관청으로의 권한 위임 등 기능중심적 구조조정을 병행할 때, 그리고 기업 마인드를 투영할 때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신문 칼럼) 작은 정부론과 공무원 퇴출제도의 상관관계는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퇴출제도의 문제점과 방안

공무원 퇴출제도는 그 명분이나 필요성에 대한 높은 공감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과 가정의 존재 위기를 부르고, 공직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며, 퇴출 자체에 대한 관심만 높이는 등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무엇보다 현재의 조급한 추진이 초래하고 있는 절차적인 비합리성과 단견 등에 대한 비판이 많다. '첫째, 절차의 비민주성이다. 직원들 신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하면서 직원들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언론에 먼저 공표하여 마치 서울시 전 공무원이 무능력·불성실 공무원인양 호도하고 있다. 둘째, 현장시정추진단 구성과 운영의 비합리성이다. 아무런 선정기준도 없이 그저 기관장의 느낌으로 뽑겠다고 하니 서울시 6급 이하 공무원들의 생사(生死)가 관리자의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되어도 될 만큼 하찮은 것인지 참으로 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각 실국별로 3%를 의무적으로 채워야 한다니 어떤 실국은 실제 한 명도 없을 수 있고 어떤 실국은 3%가 아니라 10%가 있을 수도 있는데 무조건 3%를 채우라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서울시 공무원 노조)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제도 자체의 목적에 더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이번 무능 공무원 퇴출제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인사행정의 여러 변수 중 가장 중요한 공무원의 지속적인 능력발전 및 높은 근무의욕의 유지에 두어야 하지 퇴출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지금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지만 보다 체계화되고 실질적인 직무분석과 이를 근거로 누가 보더라도 타당성 있는 근무성적평정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신문 칼럼) 공무원도 상시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취지여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일하는 풍토를 만들겠다는 철밥통 깨기 노력이 공무원의 사기만 저하시키는 분위기 깨기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 생각해 보기

공무원 퇴출 제도와 관련해 다음의 두 가지 입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합당할지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보자.

먼저 파레토의 법칙이다. 상위 20%가 나머지 80%를 먹여살린다는 파레토의 법칙은 세계적인 기업의 CEO들이 기업과 사회 조직의 현실을 두고 인용하면서 유명해졌다. 이 법칙은 개미 사회를 봤더니 20%가 열심히 일해서 사회를 유지하기에 그 20%만 모아놓자 다시 20%만 애쓰고 나머지는 놀거나 빈둥거리더라는 사실에서 나왔다. 공무원 퇴출 제도와 연관시켜 말한다면 어차피 무능한 직원을 잘라내봐야 또 다시 무능한 직원들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그레샴의 법칙을 보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은 품질이 나쁜 돈이 품질이 좋은 돈을 쫓아낸다는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요즘 사회에 견준다면 나쁜 습관이나 풍조가 좋은 것들을 쫓아버린다고 할 수 있겠다. 공무원 사회에서도 쫓겨나야 할 사람이 쫓겨나지 않고 자리를 채울 가능성이 크므로 제도 추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논리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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