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것이 살려고 저렇게 견디는데…"
곤히 잠을 자던 준(1)이의 숨소리가 잦아듭니다. 품에 안은 아이의 숨소리에 제 모든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아이의 가느다란 팔에는 주사 바늘이 뚫고 간 흔적만 눈에 띕니다. 아이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립니다. "준아, 할 수 있어. 엄마가 있잖아. 제발, 준아." 아이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이 있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정성이 부족한 때문일까요. 갑자기 아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눈의 초점도 심하게 흔들립니다. 놀란 마음에 '산소 포화도' 기계를 바라봅니다. 코에 꽂혀 있는 호스의 산소 양도 늘려봅니다. 제발. 눈을 질끈 감고 기다립니다. 다행히 위험수치까지 떨어졌던 '산소 포화도' 수치가 서서히 회복을 하네요. 준이의 얼굴에서 핏기가 돕니다. '준아, 잘했어. 고마워. 많이 아팠지. 엄마가 미안해. 준아.' 아이를 안고 미친 듯이 중얼거립니다. 혼미한 상태에서 얼핏 눈을 뜬 아이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힘이 풀린 아이는 잠에 빠져듭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과 사를 오가는 준이에게 전 오늘도 아무것도 해 주질 못했습니다.
우리 아들 준이는 '신생아 호흡 곤란증'이란 희귀병을 앓고 있습니다. 폐 기능이 약해져 혼자서는 호흡을 못하는 병이라더군요. 생후 두 달 만에 찾아온 병 치고는 너무 가혹했습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핏덩이에게 바늘을 꽂고 코를 뚫고 기계를 장착해야 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오갔지요. '산소 포화도' 기계를 장착하기 위해 아이의 손엔 붕대가 친친 감겼고, 한쪽 팔엔 굵은 주사 바늘이 아이의 혈관을 짓눌렀지요.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죽음에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요. 포기하려고도 했지요. 병원비로 수백만 원을 낼 때마다 아주 못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준이는 필사적으로 버텨냈습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숨이 넘어갈 듯 경기를 일으켜도 준이는 발버둥치며 이겨냈지요. 내 배로 낳은 자식 하나 건사하지 못한 전 준이를 보살필 자격도 없는 어미였지요.
이를 악물었습니다. 지난 13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이에게 매달렸지요. 병원에선 폐의 70% 이상이 기능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기계에 의지해서 살 수밖에 없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요. 그렇지만 준이에게 여력이 남아 있는 한 저도 포기할 수 없었지요.
준이에게 매달린 동안 우리 부부에겐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PC방을 운영했던 남편이 진 빚 1억 원이 우리 가족을 옭아댔습니다. 지인들에게 빌린 병원비도 1천만 원을 넘어섰지요. 불행은 몰려다닌다고 했던가요.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친정 아버지(74)께 얹혀 사는 것도 더이상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치매를 앓던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우리 부부는 아버지 집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됐지요. 첫째 아이 민이(5)를 돌봐줄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악몽이기를 바랐지만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남편은 그러더군요. 살아있는 준이를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서자고. 우린 아직 젊어서 할 수 있다고. 남편의 말을 믿고 오늘도 하루를 또 이렇게 버텨냅니다.
3일 오후 두꺼운 서류 봉투를 들고 매일신문사를 찾은 준이 아버지 박정수(가명·32) 씨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아내는 병이 갑자기 악화된 준이를 데리고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매번 있는 일이지만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지 모르겠다."는 그의 표정에선 절망이 묻어났다. 그는 병원비를 위해 관할 구청을 찾아 병원비 지원 신청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하지만 희귀난치병으로 의료 급여를 받고 있는 준이에겐 더이상 지원될 제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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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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