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나라의 세 여성의 전혀 다른 삶을 조명하는 세 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영국의 '플루토에서 아침을', 한국의 '천년학', 일본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세 편이다. 평범한 중학교 선생에서 마사지걸이 된 일본의 마츠코,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패트릭, 사랑하는 남자와의 인연을 접고 소리에만 매달려야 했던 한국의 송화까지, 영화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여자의 일생을 따라가본다.
◆ 여자 이야기? 아니, 남자이야기? -'플루토에서 아침을'
"장미와 캔디 그리고 미니스커트, 모피, 스타킹, 샤넬 No.7… 이게 다 뭐냐고요? 모두 제가 사랑하는 것들이랍니다. 전 남자아이에요, 여자가 되고 싶은. 이름은 패트릭이죠. 하지만 그냥 키튼이라 불러 주세요. 전 그 이름이 좋거든요.
전 갓난 아기였을 때 성당 앞에 버려졌어요. 저를 버린 엄마는 아마 제가 이렇게 섹시한 여자로 자란 걸 보면 좀 후회할지도 모르죠. 저는 엄마를 '유령 숙녀'라 부른답니다. 엄마는 잠들지 않는 도시 런던이 삼켜버렸대요. 전 어렸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고, 어느 날 유령 숙녀를 찾으러 런던으로 떠날 결심을 했답니다.
런던은 사실 최악이었어요. 런던엔 심각한 일들만 가득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우울해할 제가 아니죠. 딱딱한 건 질색이거든요. 제가 과연 유령 숙녀를 찾을 수 있을까요? 이 길고 긴 여행을 마치면 달콤하고 평화로운 아침을 먹을 수 있을까요?"
영화 '플루토에서 아침을(Breakfast On Pluto)'은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플루토(명왕성)는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의미한다. 여장 탓에 가족과 자주 부딪치던 패트릭이 생모를 찾아 떠나는 내용을 발랄하게 그리고 있다.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는 사회자 약자인 이들을 통해 부조리와 불평등, 차별이 만연한 세상을 꼬집는다. 닐 조던 감독은 이 영화를 "순수함, 상상의 힘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하고 있다. 5일 개봉.
◆ 비껴가는 사랑과 한(恨) -천년학
서편제에 이어 '천년학'에도 한(恨)의 여인, 송화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남남이지만 소리꾼 양아버지에게 맡겨져 남매가 된 동호(조재현 분)와 송화(오정해 분). 서로의 소리와 북장단을 맞추며 자라난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동호는 마음 속의 연인을 누나라 불러야 하는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몇 년 후, 양아버지가 죽고 송화는 눈이 먼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제 송화를 누나가 아닌 여자로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동호는 송화의 발자취를 찾아 길을 나선다. 하지만 엇갈린 운명으로 얽힌 두 사람은 가슴 아린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로 자꾸 비껴가기만 한다. 그러던 중 동호는 유랑극단 여배우 단심(오승은)의 유혹에 흔들리고, 송화는 이 소식에 충격 받아 모습을 감춰버린다. 동호는 오랫동안 송화를 짝사랑했던 선학동 선술집 주인 용택(류승룡)에게서 자신이 미처 몰랐던 송화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원작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에서 여주인공 '송화'는 한으로 점철된 인생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동생이라 불러야 하고 눈은 멀어 앞을 볼 수도 없다. 오로지 '소리'에 매달려 살아가기에 여자로서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영화 '천년학'은 판소리를 주요 모티브로 하고 있고 '서편제'에서 주인공이었던 동호와 송화가 '천년학'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점 등 '서편제'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서편제'가 힘겹게 살아가는 소리꾼 가족의 한을 그렸다면 '천년학'은 힘겨운 가운데 느끼는 사랑 이야기가 핵심 주제로 비중있게 다뤄진다. 12일 개봉.
◆ 일본판 '영자의 전성시대'-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영화는 마츠코의 일생을 좇아가며 진행된다. 중학교 교사 마츠코는 남부러울 것 없다. 교직이라는 안정된 직장에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상처가 있다. 병약한 여동생 때문에 자신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사랑에서 늘 소외돼 있다.
어느 날 마츠코는 수학여행에서 절도사건에 휘말린다. 마츠코가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 류가 도둑질을 했다는 게 분명하지만 류는 일관되게 부인한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마츠코의 엉뚱한 행동은 학교에서 쫓겨나는 결과를 낳는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마츠코는 집을 나와 작가 지망생과 동거한다. 그 남자는 숨막히는 현실을 마츠코에 대한 폭력으로 씻어낸다. 남자는 자살해버리고 좌절한 마츠코는 그의 친구와 불륜에 빠진다.
그러나 불륜은 불륜으로 그칠 뿐. 마사지걸이 된 마츠코는 몸을 팔며 한때 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을 빼돌린 정부를 살인하기에 이른다.
교도소에서 배운 미용 기술로 미용실에 취직한 그는 평범한 삶을 살려 하는데, 마츠코 앞에 나타난 이는 야쿠자가 된 제자 류. 류는 "선생님을 좋아했기 때문에 도둑질을 했다."는 말을 하고 마츠코와 류는 파국이 뻔한 동거를 한다.
류가 감옥에 가 있는 동안 류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마츠코는 희망을 안고 기다리지만 마츠코의 진실한 사랑에 죄스러웠던 류는 출옥 후 마츠코를 떠난다. 그 후 마츠코의 삶은 피폐하고 황폐해진다. 그리고 마츠코의 죽음은 안타까운 시점에 엉뚱하게 이뤄진다.
영화는 암울하고 쓰라린 여자의 삶을 비관적으로 보는 걸 허용하지 않을 만큼 곳곳에 블랙 유머를 집어넣었으며, 사이 사이 등장하는 뮤지컬적 요소는 영화의 형식을 풍성하게 만든다. 12일 개봉.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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