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뽀록난 아마추어 밀사

입력 2007-04-02 11:39:30

어느 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꼬마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집안에서는 엄마 아빠를 잘 도와드려야 착한 어린이겠지요. 오늘은 각자 집에서 어떤 일을 도와드렸는지 발표해 봅시다.' 그러자 꼬마들이 너도나도 손을 치켜들고 자랑했다. '어머니 청소일을 도와드렸어요.' '저는 아버지 구두를 닦아드렸어요…'

그런데 한 녀석이 끝까지 손을 들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 너는 왜 발표를 안 하지? 아무 일도 안 도와드렸니?' 꼬마가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가만히 있었어요!' '왜 안 도와드리고 가만히 있었니?' '우리 엄마가요, 제가 너무 설쳐댄다고 너는 가만히 있는 게 도우는 거다고 하셨거든요'.

뭘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이것저것 서툴게 설쳐대면 되레 일을 그르치고 훼방만 끼친다는 세상사를 떠올리게 하는 實話(실화)다. '초딩'교실에서나 있을 법한 그런 황당한 일이 권력 최고 상층부에서 빚어졌다.

집권 직후부터 '아마추어 정권'이란 불신을 받아오던 386참여정권이 정권 막바지에 또 한 번 자칭 '대장놀이'라는 대북 密使劇(밀사극)을 저질러 政局(정국)을 소란스레 만들고 있는 게 그것이다. 한마디로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초딩'수준의 외교행적으로 나라체통, 남한 국민들의 자존심에 먹칠한 셈이다.

우선 집권하자마자 부정한 돈과 관련해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했던 대통령 최측근 인물이 풀려 나오자마자 自肅(자숙)은 고사하고 '대장놀이'(남북정상회담)라는 밀사놀이를 벌인 것부터가 기가 찰 일이다.

제대로 된 밀사였다면 그들 암호대로 양쪽 대장들이 회담장에서 만나는 아침나절까지도 밀사의 정체가 베일 속에 싸여있어야 말 그대로 밀사다. 회담성사는 고사하고 밀사의 비밀스런 행적까지 낱낱이 '뽀록'나버리자 '한번밖에 안 만났다'느니 어쩌니 구구한 해명만 늘어놓고 있다. 정치적 의혹과 무능 정권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우고 정치권에 쓸데없는 파문과 갈등만 일으켰다.

'초딩'들에게조차 '아저씨들은 가만히 있는 게 나라일 도우는 것 같아요'란 핀잔을 들을 판이다. 더구나 시원찮은 밀사들이 설치고 다닐 때는 6자회담이 계속 논의되고 있던 시점이다. 공식적인 국제외교 활동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秘線(비선) 밀사들이 공식 외교무대의 뒷구멍으로 들락거린 것은 多者(다자)외교의 큰 틀을 되레 그르치고 훼방할 위험이 큰 행위다. 아무리 남북정상회담이 이 정권의 애타게 목마른 꿈이었다 해도 이번 대장놀이 밀사파문은 국가 시스템을 흩트리고 국민의 이목을 속이려 들었다는 점에서 명백하고도 심각한 과오다.

이 나라가, 더 나아가 남북한 민족의 운명이, 아마추어 집권세력의 비밀스런 私(사)적 '놀이'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얼마나 自慢(자만)에 찬 집권세력이면 외교부 국정원 등 국가 시스템을 제치고 실정법을 무시한 불법적 비밀접촉을 통해 밀실공작을 겁 없이 펼치는가. 더욱이 아마추어 밀사들이 설치고 다닐 때도 이 정권은 '금시초문'(청와대 대변인)이라거나 '참여정부는 어떤 정책도 물밑이나 비밀방식으로 하지 않는다'(한명숙 전 총리)며 오리발을 내밀기까지 했었다.

몰랐다면 국민들을 속인 거짓말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국정을 지휘하는 총리와 청와대 핵심이 그런 위험한 대북놀이도 모르고 있었다면 뽀록난 밀사보다도 더 한심스런 국정책임자란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

탈법 아마추어 밀사들의 '뽀록난 밀사'행각을 보면서 과연 좌파소리를 들어온 이 정권이 이번 밀사 말고 또 어떤 비밀스런 접촉과 밀실교섭을 오늘 이 시간에도 벌이고 있지나 않을지. 아직 뽀록나지 않은 민족의 存亡(존망)이 걸린 위태한 또 다른 '놀이'는 않는지 불안이 스친다. 남은 1년, 제대로 못 하겠으면 가만히 있어라. 그게 이 나라를 돕는 길이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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