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 '진리탐구' 없는 대학, 희망도 없다

입력 2007-04-02 07:01:16

야생의 생물들도 취업을 걱정한다. 그들의 취업 경쟁은 생존 투쟁이다. 자연에 선택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그런 생존 투쟁은 살아남기 위한 '유전자 배열의 수선과정', 진화를 강요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성취된 야생 생물들의 궁극적인 직업을 '생태적 지위'(niche)라 한다. 이처럼 생명체들의 직업이란 생존투쟁의 과정이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요즘 대학가의 화두는 '취업 문제가 심각하며 특별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지금의 취업환경이 과거보다 더욱 나빠졌다거나 특별하다고 할 만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옛날보다 산업 분야는 크게 분화되었으며, 그만큼 다양한 직업도 창출되었다.

거기다가 실질적인 인구 증가율은 오히려 감소되었다. 결국 모든 대학이 취업문제에 올인하고 있지만, 해당 직업에 적합하게 준비된 인재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학을 슐레(Schule)와 김나지움(Gymnasium)의 집합명사인 스쿨(School)이라 하지 않는다. 대학은 유니버서티(university=universe+ity)이다. 유니버서티는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것, 즉 베리타스(Veritas) '진리'를 공부하는 곳으로 정의한다.

개교 650여 년이 되는 유럽 V대학의 선전포스터에 이런 헤드라인이 적혀 있었다. 독일어 'Forschen, Lehren, Lernen', 즉 '연구하고, 가르치고, 배운다'이다. 대학의 본질, '진리 탐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진리 때문에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 교수와 제자는 함께 목숨을 바쳤다. 사건은 바로 엊그제의 500여 년 전의 일이다. 대학이란 바로 그런 진리를 탐구하고 가르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다.

최첨단 생명복제기술도 '세포가 생명의 기본 단위'라는 진리가 밝혀짐으로써 가능하였으며, 달나라에 남겨진 암스트롱의 발자국도 '지구가 돈다'는 진리로부터 가능하였던 것이다. 오지랖이 넓은 느티나무 노거수와 남근석이 우리 민족의 북방기원을 증명한다는 사실도 생태학적 진리탐구의 성과이다.

자금회전율을 따지는 작금의 경제 논리와 경영 논리의 틀에서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이다. '진리 탐구'가 없는 숱한 첨단기술과 기법은 기초가 부실한 사상누각일 뿐이다. 절대자의 프로그램, '진리'는 우주의 원리이며, 삼라만상의 원리인 것이다. 시대정신에 따라 변화하거나 변화해 버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진리탐구는 통제가 아니라 학문의 자유와 창조적 발상에서 성취될 수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우주적 평화와 행복으로 이어진다. 대학의 연구와 강의 그리고 배운 것을 검증하는 성적평가가 가장 성스러운 교권의 핵심으로 합의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결국 인류사회에 대한 대학의 가장 큰 봉사는 권력에 줄서는 것으로부터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성실히 진리를 탐구하고 가르치는 것으로부터 성취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학은 스승보다 더 뛰어난 제자를 키워내는 靑出於藍(청출어람)의 산실이 된다. 그래야 인류는 웰빙하고 발전한다. 그랬을 때, 대학은 희망인 것이다.

이 시대에 대학의 본질을 되새기는 이유는 대학이 바로서야, 고등학교·중학교·초등학교·유치원이 바로서기 때문이다. 대학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는 의미이다. '진리 탐구'의 궤도를 크게 이탈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 대학의 因果(인과)는 후세들에게 그만큼 應報(응보)로 남을 것이다.

지금 당장, 한국의 대학이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一場春夢(일장춘몽)의 헛소리라는 것을 떨칠 수가 없으니, 이건 도무지 무슨 까닭일까!

김종원(계명대 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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