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속리산서 어색한 포즈로 찍던 사진

입력 2007-03-31 07:07:42

나에겐 신혼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라곤 희미한 윤곽만 잡혀 있는 스냅사진 여섯 장이 고작이다. 웬만하면 폐기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망친 사진이지만 고르고 골라서 겨우 수확한 천금 같은 흔적이다. 이나마도 없었다면 신혼여행은 그저 꿈에서나 다녀 온 것쯤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해외로 나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 온천이나 사찰이 있는 관광지가 신혼여행지의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휴일마다 전국에서 쏟아내는 신혼 커플들이 만만하게 가는 곳이 보은 속리산 법주사였다. 그 당시만 해도 제주도 여행은 요즘의 해외여행보다도 더 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는 사람이 그리 흔치 않았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 꼬불꼬불 열두 굽이라는 말티고개를 넘어가면서 엄습한 멀미 때문에 정신을 놓고 말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관방이었다. 그래도 신혼여행이랍시고 사진을 찍어야 된다고 우기면서 비틀걸음하는 나를 이리저리 끌고다니던 남편은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더러는 부탁을 하다가 나에게 카메라를 넘겼다. 멀미로 인해 정신이 온전치 못한 내가 똑바로 셔터를 눌러댈 리가 만무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찍어댔다. 광대놀음 같은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연출을 해 가면서 2박3일 동안 필름 세 통을 다 풀었지만 이목구비 똑바로 나온 것은 한 장도 없었다. 남편과 관광객이 눌러 댄 것도 모두 엉망으로 나왔으니 망정이지 내가 찍은 것만 골라서 망쳤다면 두고두고 원망을 들어야 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덤터기는 쓰지 않았다. 아마 카메라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선명한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했던 신혼여행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서 은근히 서운해지는 요즘 문득 법주사로 구혼여행이라도 훌쩍 다녀오고 싶어진다. 그래서 빛 바랜 기억을 더듬어 남편과 같이했던 자리를 찾아 스물여섯 해 전의 신부로 돌아가 이젠 어설프지 않은 포즈를 디지털 카메라에 담아서 그날의 원수 갚음을 해야만 또아리를 틀고 있는 서운함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영숙(경북 영주시 휴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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