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추억] ⑫정미소

입력 2007-03-30 07:59:11

지난 26일 봉화군 춘양면의 물미정미소. 김용일(82) 할아버지가 동력을 발생시키는 원동기를 힘겹게 돌리기 시작했다. 오래된 기계인 탓인지 점화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손으로 원동기를 돌렸는데 이제는 기운이 달려 모터를 써서 돌린다."고 했다.

처음에는 '치~쿵, 치~쿵…'하고 가벼운 기계음 소리가 났다. 10초 정도 지났을까. '털털털~퐁퐁퐁, 털털털~퐁퐁퐁…'하는 굉음과 함께 공장 전체가 흔들렸다. 정미소 천장에 달린 큰 크랭크축과 벨트가 힘차게 회전운동을 했다. 귀가 멍멍했다. 이러다가 구멍이 쑹쑹 뚫려 있는 판자 지붕이 내려앉는 것이 아닐까. 낡은 도정(搗精)기계는 방문객의 불안에도 아랑곳없이 잘도 돌아갔다. 도시에서 자란 필자를 제외한 취재팀원들은 "어린시절 수 없이 들었던 추억의 소리"라며 손뼉을 치고 좋아했다.

김 할아버지는 "작년 가을 추수 후에 돌린 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는 찾아오는 손님도 없고 우리 집 양식만 찧어 먹고 있다."고 했다. 부인 류말녀(74) 할머니가 "쓸모없다고 고물로 팔자고 하는데도…."라고 하자 김 할아버지는 "쓸데없는 소리"라며 화를 냈다. 할아버지는 30년 넘게 자신의 손때가 묻은 기계에 애착이 많았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내년쯤 수확한 벼를 다 찧고나면 가동을 멈출 것이라고 했다. 그때쯤이면 원동기로 돌아가는 전국 유일의 도정공장이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것이다.

▶사라지는 옛 정미소=웬만한 시골마을이면 정미소가 한두 개씩 있었다. 벼를 수확해 쌀로 만들려면 정미소를 찾아야 했다.

정미소의 전성기는 1970년 이전까지였다. 당시엔 정미소 사장이라면 '동네 최고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후 정부의 양곡수매량이 늘어남에 따라 동네 정미소는 점차 쇠퇴했고 최신시설을 갖춘 정부양곡 도정공장만 남게 됐다. 인구 5만 명이 채 되지 않는 봉화군에 있는 정미소는 45개. 현대식 시설을 갖춘 곳도 있지만 상당수는 이미 가동을 멈췄거나 1년에 몇 차례씩 기계를 돌릴 뿐이다. 예전 정미소는 자동화된 도정공장에 비해 아주 원시적이다. 방앗간과 공장의 차이라고 할까.

전북 남원에서 전주로 가는 국도로 30분쯤 가다보면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가 나온다. 들판이 넓어 군내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동네로 불렸다. 인근의 논을 모두 합하면 1천 마지기(20만 평)가 넘고 60~100마지기를 가진 농부도 여럿 있다고 한다.

관기정미소의 전규삼(49) 씨는 "요즘은 물량이 많지 않아 평소에는 농사를 짓다가 가끔씩 도정기계를 돌린다."면서 "전국의 정미소를 돌아다니며 쌀을 사러 오던 쌀 장수가 없어진 지도 몇 년 됐다."고 했다.

관기정미소는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외관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나무 건물이다. 문턱은 닳아 윤이 반짝반짝 났고 손때가 많이 묻은 쇳덩어리 기계도 번들거렸다. 예전에 쓰던 원동기가 디젤엔진으로 바뀌었을 뿐 가동 방식은 예전 그대로였다. 삽으로 나락을 기계에 밀어넣으면 나락석발기(돌, 쭉정이 등을 골라내는 기계)→왕겨풍구(나락을 까고 껍질을 날려보내는 기계)→현미분리기→현미석발기→정미기→백미탱크 순으로 복잡한 공정을 거쳤다.

이를 지켜보고 있으니 천장과 벽에 판자가 왜 얼기설기 붙어있는지 이해가 됐다. 도정을 하는 과정에서 나락 가루가 많이 날려 숨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활짝 열어놓은 문과 벽·천장의 쑹쑹 뚫린 구멍으로 가루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명맥을 유지하다=김천시 아포읍 지동정미소. 황토흙 벽에 판자로 지붕을 올린 70년 넘은 정미소다. 주인 도기숙(54) 씨는 "정미소에는 육체노동이 많아요. 나락 가마니를 지고 옮기는 일은 여자로서 무척 힘들어요."라고 했다. 정미소 안에는 3단으로 쌓아올린 나락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여성이 쌓아올린 탓인지 깔끔하고 단정하게 보였다. 도 씨는 "이렇게 쌓아놓아야 쥐가 덤벼들지 못하고 신선도가 유지된다."면서 "나락 가마니들은 대구, 구미에 나가 있는 논 주인들이 맡겨놓고 필요하면 찧어달라고 한다."고 했다. 바로 도정해 밥을 지으면 훨씬 맛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그는 "요즘 수입이 거의 없어 밥을 굶을 지경"이라며 "30년 전부터 해오던 일이어서 계속할 뿐"이라고 했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허물어진 정미소가 눈에 띄었다. 천장과 벽이 내려앉았을 뿐, 정미기계는 녹슨 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동네사람에게 물어보니 10여 년 전에 가동을 멈췄는데 계속 미루다 철거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물값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크랭크축과 8자 모양의 벨트…. 우리에게 아스라한 추억만 남겨두고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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