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야~즐거워져라!…위대한 일터(GWP) 열풍

입력 2007-03-29 09:44:53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항상 무거웠다. 봉급생활자 가운데 '월요병(휴일 직후 시작되는 출근에 대한 두려움)'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터. 일터는 봉급생활자들에게 '해뜨면 마지못해 끌려나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요즘, 많은 경영자들이 일터를 바꾸려하고 있다. 재미있고, 신나는, 아니, 미치도록 가고 싶은 '위대한 일터(Great Work Place)'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경영자들의 생각.

제조업은 물론, 금융권 등 서비스업종으로까지 이같은 바람은 확산하고 있다. 일터는 과연 '위대한 장소(Great Place)'로 거듭날 수 있을까?

◆재미없는 관리자는 떠나라

영국계 금융회사인 HSBC은행. 이 곳은 지점장들의 인사고과를 매길 때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가'를 평가하고 있다. 인사고과가 100점 만점이라면 무려 30점을 이른바 '펀(Fun) 경영(일터를 즐겁게 만들어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 항목에 할애하고 있다. 사실상 '펀 경영'에서 점수를 얻지 못하면 관리자로서 오래 근무하기는 힘들다.

이 곳 지점장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목소리는 나긋나긋, 표정은 생긋생긋. 경상도 사람들의 치명적 약점인 목소리 데시벨(db·소음 측정기준)까지 신경쓴다는 것이 이 곳 관리자들의 얘기.

HSBC은행 박태호 대구지점장은 "지점 직원들을 어떻게 즐겁게 만들것인가라는 계획을 내고, 이에 맞춰 실행한 뒤, 그 결과를 보고해야한다."며 "매일 직원들을 대할때마다 웃으며, 상냥하게 해야하는 것은 기본이고, 매달 스포츠관람과 문화행사 등에 직원들과 함께 참여하며 스킨쉽을 통해 서로의 신뢰를 쌓아간다."고 했다.

대구은행의 이화언 행장. 그는 올해부터 '써번트 리더쉽(Servant Leadership)'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군림하는 CEO에서 탈피, 직원들과 어깨를 맞대며 함께 호흡하는 CEO가 되겠다는 것. 이 행장은 우수직원들을 시상할때면 단상을 내려간 뒤, 직접 직원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 상을 전달한다. 평직원들과 자주 산에 오르며 대화를 하는 것도 이 행장의 특징.

진병용 대구은행 경제연구소장은 "CEO가 일방적으로 명령하던 리더쉽보다 CEO가 직원들을 섬기며 솔선수범하는 리더쉽이 조직 경쟁력을 높인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다."고 했다.

◆일터의 모든 문화를 바꿔라

이른바 'GWP'를 가장 맹렬하게 실천하고 있는 곳이 삼성그룹 계열사들이다. 삼성 계열사들이 모여 있는 구미의 경우, 'GWP'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구미 제일모직. 이 곳은 지난해 GWP를 시작한 이후 올해 본격적으로 정착시킨다는 계획을 잡고 있다.

이 회사엔 벌써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직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던 '회의 문화'를 이 회사는 완전히 바꿨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회의가 이어지는 날이 많았다. 회의 자료 준비하느라, 실제 회의하느라, 회의 결과자료 만드느라, 적잖은 직원들이 '회의 노이로제'에 시달렸었다.

그러나 이 회사 사람들은 요즘 회의에 들어갈 때 30분짜리 모래시계를 들고 들어간다. 모래시계를 엎어놓고 30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회의는 끝난다. 아예 회의를 하루종일 하지 않는날도 만들었고, 노트 가지고 다니지 않는날도 만들었다. 엉뚱한 회의를 없애기 위함이다.

이 회사의 GWP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강성근 대리는 "업무에서는 물론, 고주망태를 만들었던 회식문화도 즐겁고, 재미있는 문화·체육 프로그램으로 바꿨다."며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거 또 직원들 잡으려고 만든것 아니냐'는 회의적 시각이 있었지만 이제 직원들이 회사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삼성생명, 삼성증권 등 삼성의 금융계열사들도 직원들이 휴가를 반드시 사용하도록 하는 등 '쉬는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노력하고 있다. 휴가를 가지 않을 경우, 관리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등 일터 문화를 바꾸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것.

◆왜 GWP인가?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인 로버트 레버링(Robert Levering). 그는 미국이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며, 경기침체기를 겪던 1980년대초, 악조건속에서도 경쟁력을 잃지 않고 있는 미국의 초일류기업들을 주목했다. 그리고 그 기업들은 도대체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초일류기업이라고 할 만한 기업들을 분류, 10여년간에 걸쳐 현장조사를 통해 연구한 결과, '신뢰 관계'가 초일류기업을 지탱해주는 힘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급여나 기업내 제도 등은 초일류기업을 가능케한 근본적 원천이 아니었던 것.

결국 초일류기업은 조직 내부의 다양한 관계가 신뢰를 밑바탕에 두고 맺어져 있다는 것을 그는 깨쳤다. 구성원을 중심으로 봤을 때 상사와 경영진에 대한 높은 신뢰, 업무·회사에 대한 강한 자부심, 동료들끼리 재미있게 일하는 모습을 초일류기업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전문 저널인 포천도 레버링의 연구결과를 인정, 1998년부터 매년 신년호에 GWP기업들을 선정해 '포천 100대 기업'을 발표하고 있다. 100대 기업의 정식 명칭은 '포천이 선정한 일하기에 훌륭한 미국의 100대 기업'(Fortune 100 Great Places to Work for in America). 이것을 줄여서 GWP란 조어가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를 비롯, 전세계 기업들이 앞다퉈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