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농촌체험] ④포항 메뚜기 마을

입력 2007-03-29 07:11:26

어른은 동심체험·자녀는 인생체험

"노란 꽃은 복수초입니다. 꽃말은 '슬픈 추억'이지요. 요건 원추리입니다. 지금은 볼품없지만 여름에 아주 예쁜 꽃이 핍니다. 저건 로즈마리라는 허브인데 아빠들 약주 드실 때 잎을 넣어 마시면 좋답니다."

뇌성산(213m) 자락 비탈에 자리 잡은 분재 비닐하우스. 황보찬(47) 메뚜기마을 사무국장의 설명을 듣는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난다. 먼 길을 달려온 터라 피곤할 법도 한데 솔 향기 가득한 자연이 마음마저 평화롭게 하는가 보다.

욕심이 과한 탓일까. 설명들은 대로 화분 여기저기 꽃들을 심어보지만 작품다운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여백의 미'는커녕 '무성한 잡초밭'이 되곤 만다. 하지만 어떠랴. 첫 술에 배 부를 수는 없는 법. 흙 묻은 손, 자연을 느끼는 손길은 아름답기만 하다.

산채비빔밥으로 요기를 한 뒤 마을을 굽어보는 광남서원으로 향한다. 단종을 보좌하다 1453년 계유정란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된 충정공 황보 인을 기리기 위해 1791년 지방 유림과 후손들이 세운 곳이다.

"저희 마을은 영천 황보씨 집성촌입니다. 영의정을 지내시던 황보 인 할아버지께서 멸문을 피하기 위해 여종에게 손자를 맡기셨는데 그 여종이 한양에서 땅끝인 이곳에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포항에서 현직 교사로 있는 황보태권(60) 씨의 마을 유래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모두들 먹을 갈고 화선지를 받아든다.하지만 서예를 하는 건지 그림을 그리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지켜보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대견하기만 한가보다. 충절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던 선비정신이 깃든 곳에서 우리 전통을 배운다는 것은 잊지못할 추억이 아닐까.

다시 찾은 마을회관에는 윷판이 한창이다. 마을 할머니들이 두 패로 나뉘어 열을 올린다. "윷이야, 모야" 옆에서 구경하는 이의 어깨도 저절로 들썩인다. 이게 바로 사람 사는 냄새다. 순박한 농심이다.

모닥불 속에서 감자와 고구마가 익는 동안 한바탕 신명나는 사물놀이가 벌어진다. 제 덩치만한 큰 북을 매느라 낑낑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다. 전날 내린 비로 젖은 흙에 신발이며 옷을 버려도 아랑곳없다. "그래도 제법 눈썰미들은 있네. 처음 해보는 것치고는 잘 하는데. 하하하." 촌로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핀다. 산촌의 밤은 즐겁다.

이튿날 아침, 부지런한 체험객들이 새벽부터 부산을 떤다. 동해 일출을 보러 가는 길이다. 산중턱에 오르니 벌써 숲 너머로 붉은 기운이 비친다. 발걸음이 바빠지고 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수평선에서 보는 그것과 또다른 감흥이 있다.

들판에는 봄비가 데리고 온 귀여운 새싹들이 가득하다. 경운기를 타고 가며 맞는 봄바람이 싱그럽다. 모두들 쪼구려 앉아 냉이며 쑥이며 시금치를 캐느라 정신이 없다. "자연을 가까이한다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난생 처음 해보지만 너무 재미있네요."

등대박물관을 들른 뒤 돌아오는 길, 모두의 마음이 여유롭다. "아빠, 소 먹이 주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우리 다음에 또 와요." "그래, 그러자꾸나. 농촌이 TV보다 훨씬 재미있지?"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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