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치료, 환자 마음 먹기에 달렸다

입력 2007-03-29 07:27:08

당뇨병 및 고혈압 환자인 김모(61) 씨는 다니던 내과에서 치료가 잘 되지 않아 성인병을 전문으로 본다는 내과로 옮겼다. 김 씨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을 꾸준히 먹으면 합병증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더 이상 고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원장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이전의 의사는 그냥 약만 처방해 줄 뿐 별다른 설명이나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을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합병증 위험도 사라지고 혈당과 혈압 관리도 이전보다 잘 됐다. 무슨 특효약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약사에게 현재의 약과 이전의 약을 비교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약의 성분엔 큰 차이가 없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플라시보' vs '노시보'

의학에서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란 말이 있다. 플라시보는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라는 라틴어가 어원. 환자에게 설탕, 소금, 증류수 등 몸에 해롭지 않은 가짜 약을 주면서 진짜 약 이상의 효과가 나타나거나 의사를 만났을 때 아픈 몸이 나아지는 느낌을 갖는 경우를 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 즉 믿음이나 긍정적인 생각만으로도 치료 효과를 얻는 현상이다.

반면 아주 작용이 없는 물질을 주면서 '이것을 먹으면 머리가 아플 것이다.'고 말한 경우, 이를 먹은 사람들은 진짜로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노시보 효과라고 한다. '당신을 해칠 것이다.'란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어떤 것이 해롭다는 암시나 믿음으로 일어나는 부정적 효과이다.

◆과학적 입증

플라시보 및 노시보 효과를 입증하는 과학적 실험 결과는 많다. 최근 발표된 미국 보스톤의 한 병원(Brigham & Women's Hospital) 정신과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치료의 부작용이나 일어날지 모를 약의 부작용에 대한 환자의 예상이 치료 결과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것. 연구팀은 대학생 34명에게 그들의 머리 위로 전류가 지나가며(실제는 전류가 흐르지 않음), 그 전류가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 결과, 3분의 2 이상이 두통을 호소했다. 또 수증기를 마시는 천식 환자에게 수증기에 화학자극제나, 알러젠(알레르기 항원)이 있다고 사전 정보를 줬더니 절반 이상 환자가 호흡곤란을 일으켰고, 12명은 전형적인 천식 발작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들에게 식염수를 기관지 확장제(천식 치료용)라고 말하고 복용토록 한 결과, 바로 회복됐다는 것.

◆긍정의 힘!

인체에 나타나는 반응은 마음에 작용하는 암시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건강을 유지하고 치료를 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 실제 치료약이 귀했고, 일반인들에게 의학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엔 뚜렷한 병명이 없는 환자에게 의사가 소화제 등을 치료약이라고 주면 말끔히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할머니가 '내 손은 약 손'이라며 아픈 손자의 배를 만져주면 씻은 듯이 나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학이 발전한 요즘, 이런 효과에 의지해선 안 된다. 아픈 환자에게 치료약이 있는데 굳이 가짜 약을 줄 이유는 없다. 박용진 가족사랑정신과 원장은 "위약의 효과(플라시보 효과)는 약이 진짜 효과가 있을 것이란 믿음과 심리적 안정에서 비롯된 결과이다."며 "그러나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위약효과'를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에 대한 신뢰, 약에 대한 믿음은 치료의 효과를 높이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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