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셔, 너 같은 년 처음 봐
이년아 치마 좀 내리고, 말끝마다
그렇지 않아요? 라는 말 좀 그만 해
내가 왜 화대 내고 네년 시중을 들어야 하는지
나도 한시름 덜려고 와서는 이게 무슨 봉변이야
미친년
나도 생이 슬퍼서 우는 놈이야
니가 작부ㄴ지 내가 작부ㄴ지
술이나 쳐봐, 아까부터 자꾸 흐드러진 꽃잎만 술잔에 그득해
귀찮아 죽겠어, 입가에 묻은 꽃잎이나 털고 말해
아무 아픔도 없이 우리 그냥 위만 버렸으면
꽃 다 지면 툭툭 털고 일어나게
니는 니가 좀 따라 마셔
잔 비면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지 말고
술보다 독한 게 인생이라고?
뽕짝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술이나 쳐
또 봄이잖니
봄눈 오듯 쏟아지는 벚꽃 아래 술잔을 돌리는 일은 얼마나 낭만적인 풍경인가요. 술잔에 묻은 꽃잎을 떼어내며 후후 불어가며 마시는 술맛이란…. 여기 벚꽃 흐드러진 나무 아래 술잔을 돌리는 한 쌍의 남녀가 있군요. 술집 아가씨와 손님으로 만난 것 같은데 취기가 오르면서 어느새 오누이처럼 가까워져 있네요. 이년아, 저년아 함부로 불러대지만 아가씨는 그게 그리 싫지 않은 듯합니다. 싫기는커녕 제 오라비한테 하듯 종알종알 응석을 부리고 있군요. "한시름 덜려고 와서는 이게 무슨 봉변이냐"라고 투덜대지만 사내도 누이처럼 아가씨가 귀엽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모양입니다. 허긴 꽃잎 묻힌 입술로 종알대는 모습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난분분히 꽃잎 지는 나무 아래에선 누구나 낭만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뽕짝" 같은 감상인 줄 알기에 일부러 더 거칠게 굴고 싶은 거겠죠. 문어체의 딱딱한 어법에서 벗어나 말하듯이 술술 풀어나가는 이 한 편의 시, 꽃나무 아래 들기 좋은 한 병의 가양주(家釀酒)입니다.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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