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슈퍼스타 박태환

입력 2007-03-26 11:46:26

과거에 흑인들은 오로지 뛰고 달리고 몸으로 싸워야 하는 거친 경기 종목에서만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 골프'테니스 같은 우아하고 세련된, 고급스런 스포츠 분야에는 접근할 엄두도 못냈다. 가난한 흑인들에겐 돈 많이 드는, 백인들의 스포츠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하지만 국제 스포츠계의 '블랙 파워'가 드센 요즘 그런 장벽은 무너진 지 오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세계 테니스계를 휩쓰는 윌리엄스 자매 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흑인들은 겨울철 종목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미 복싱, 마라톤, 축구, 농구, 야구 등은 검은 폭격기들이 장악해 있다.

그런데 유독 흑인들이 '수영' 분야에서만큼은 맥을 못추고 있다. 수영이 오랫동안 백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온 탓도 있지만 흑인이 골격이나 근육 구조상 물에 잘 뜨지 않는다는 등 신체적'생물학적 특성에서 비롯된다고도 한다.

더군다나 체격과 체력면에서 열세인 아시아인에게 수영은 넘지 못할 높은 장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엄청난 이변이 일어났다. 겨우 열여덟살짜리 한국 소년 박태환이 겁도 없이(?) 제12회 세계수영선수권 대회 남자자유형 400m를 제패한 것이다. 그것도 막판 50m를 앞두고 세 명의 선수를 거침없이 앞지르는 괴력을 발휘했다. 세계선수권 자유형에서 아시아 남자 선수 우승은 사상 최초다. 이미 아시아의 수영 제왕이 된 박태환이지만 콧대높은 세계선수권대회서 메달을 따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얼마나 恨(한)이 많았으면 일본 선수들까지 "아시아인의 자존심을 살렸다"며 기뻐했을까.

박태환의 역전 우승은 시름많은 우리 국민에게 크나큰 기쁨을 선사했다. 천식 치료를 위해 네살 때 수영을 시작, 2004년엔 열다섯 나이로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할 정도로 급성장했지만 부정 출발로 실격되자 화장실에 들어가 훌쩍이던 중학생이 어느새 세계적 巨木(거목)감으로 성장한 것은 감동적이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더 큰 도전으로 마침내 승리한 모습이 자랑스럽다. 앞으로 그 앞길이 더욱 험난할지도 모른다. 당장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넘어야 할 高地(고지)다. 진정한 슈퍼스타, 박태환이 사상 첫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목에 걸 그날을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린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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