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수성구 수성1가 동성초등학교(교장 홍창성) 1학년 7반을 찾았다. 원래 8시30분까지 등교해야 하지만 아직 적응기간인 1학년 병아리들은 첫 2주간 8시50분까지 등교한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16일은 20분 늦게 등교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교사 1층에 자리잡은 7반 어린이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 교실 앞 대형 화면을 통해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학교 폭력, 특히 상급생이 하급생이 갖고 있는 물건을 빌려달려며 가져간 뒤 빼앗는 내용을 어린이 드라마 형식으로 만는 것이었다. 교실에 낮선 사람이 등장하자 일순 웅성웅성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비디오 내용이 어지간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5분 남짓 비디오를 보고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잠시 생각시간을 준 뒤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아이들이 서로 발표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남의 것을 욕심내서 빼앗아서는 안됩니다." 기다리던 답이 나오자 선생님은 자연스레 칭찬을 유도했다. "자, 훌륭한 발표를 한 민규에게 칭찬을 해줍시다." 그러자 아이들은 일제히 합창을 시작했다. "아이 참, 잘했어요. 우리 민규~ ♬."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신이 나 노래를 불렀다.
오전 9시부터 10분 독서시간이 이어지고, 곧이어 1교시 수업이 시작됐다. 독서시간에 잠시 틈을 내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기자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행여 수업에 방해가 될까 싶어 노심초사하는 중에 담임인 이아계 선생님이 자리를 내 주었다. 7반 정원은 34명. 하지만 한 학생이 입학하자마자 외국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자리 하나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맨 뒷자리에서 짝이 없이 혼자 앉아있는 송효진 어린이와 짝이 됐다.
점잖게 앉아있던 효진이는 아빠 뻘되는 짝의 등장에 자못 긴장한 눈치였다. 효진이는 3교시까지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색연필도 빌려주지 않았다. 4교시가 돼서야 마음이 쓰였는지 웃어보이며 장난을 걸어왔다.
◆1교시 수업 시작.
초등학교 1학년 첫 한달간은 학교 생활에 필요한 기본생활 규범과 사회 관계 등을 가르치는 '우리들은 1학년'을 배우게 된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갑작스레 바뀐 환경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 이날은 2주차 수업 중 '안전하게 생활해요'를 배우는 시간. 신호등과 교통표지판 알아보기, 길에서 주의할 점, 신호등 활동하기 등을 배우게 된다.
1학년 수업은 주로 발표로 이뤄진다. 7반 담임인 이아계 선생님은 35년 경력의 베테랑답게 능숙능란하게 아이들의 발표를 유도했고, 자칫 발표에서 소외된 학생이 없는지 세심히 살폈다. 육교를 놔두고 무단횡단하는 어린이의 모습이 교과서 그림에 실려있었다. 선생님은 그림에 대해 미리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내도록 유도한다. 한 장의 그림을 보고 최소한 5, 6명이 발표를 한다. 물론 전혀 엉뚱한 내용도 있지만 조리있게 내용을 파악한 답변이 나오면 아이들과 함께 칭찬한다.
매 교시 수업은 40분씩 이뤄진다. 한 시간 수업분량이라고 해야 교과서 한 페이지에 실린 그림이 전부. 때문에 그림을 보고 발표하는 형식의 수업도 한계가 있다. 단 10분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어린이 33명을 과연 어떻게 수업에 집중시킬지 자못 궁금했다. 발표가 끝나자 교통지도 내용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대형 TV를 통해 보여주었다.
상황에 대한 짤막한 교사의 설명이 이어지고 다시 어린이들이 발표를 한다. 앞 자리 어린이들은 일어서서 뒷자리 친구들을 바라보며 발표한다. 이야기를 들려줄 대상이 교사가 아니라 친구들이라는 점을 항상 인식시킨다. 발표하는 요령도 서로 약속돼 있다.
"예, 선생님. 제가 발표해 보겠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한 뒤 자신이 생각한 내용을 말하는 식. 다소 엉뚱한 발표에도 아이들은 웃는 법이 없다. 웃지 못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른들의 기준으로 보면 전혀 말도 안되는 답변인데, 아이들의 기준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가령 육교를 무단횡단하는 모습에 대한 발표에서, 한 어린이가 "길을 건널 때엔 빨리 뛰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일 때 차들이 다 멈춰선 것을 보고 천천히 건너야겠죠?"라고 말함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어떤 답이 옳은 지 판단하도록 한다.
◆ 쉬는 시간
1교시를 마치고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갈 때도 한 줄로 나란히 서서 뒷짐을 지고 걷도록 유도한다. 잠시 한눈 파는 사이 사고가 날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수업시간보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들은 더 긴장한다. 1교시 수업 틈틈히 맨 뒤에 앉은 기자를 훔쳐보던 아이들이 때를 만난 듯 찾아와 질문을 퍼부어댔다. "아저씨 누구예요?", "여기 뭐하러 왔어요?", "몇 살이예요?", "야! 어른에게 몇 살이라고 물으면 안돼!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아저씨, 내일도 와요?", "결혼은 했어요?" 도대체 이런 아이들이 어떻게 수업시간에 얌전히 있을 수 있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쳐도 도무지 긴장하는 빛이 없다. 담임이 교탁에 마련된 종을 두 번 울리자 그제서야 자리에 앉아 머리에 두 손을 올린다. 그래도 분위기가 수그러들지 않자 선생님은 동요를 함께 부르도록 했다.
◆2교시가 넘어서면
아이들이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며 친구와 말장난하기, 선생님 설명은 아랑곳 않고 딴 짓하기, 화장실 다녀온 지 10분도 채 안돼 다시 화장실 가고 싶다며 교실 앞 선생님에게 쪼르르 달려가기, 혼자서 콧노래 흥얼거리며 발로 장단 맞추기 등등. '덜렁이 그림 색칠하기'를 시작해서야 소란은 잠잠해졌다. 교통질서를 제대로 안지키고, 공중전화에 낙서하고, 위험한 곳에서 장난치는 덜렁이를 그림에서 찾아 색칠하는 공부. 선생님이 내준 프린트물에 색연필과 사인펜으로 꼼꼼히 색칠하는 작업이 시작되면서 교실은 이내 조용한 분위기로 빠져들었다. 옆자리로 온 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할 때에는 고함을 치거나 꾸중을 하면 편하지 않으세요?" 선생님은 가장 피해야 할 방법이 바로 혼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방법을 쓰면 당장 조용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겠죠. 하지만 그런 수업 분위기에서는 전혀 발표가 이뤄지지 않아요. 선생님이 화가 난 상태에서 질문을 하는데 어느 학생이 손을 들고 답을 하겠습니까?"
이 선생님은 수업 분위기를 해치는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뒤 10초 정도 눈을 감고 생각하는 시간을 준다. 그런 뒤 왜 생각시간을 가졌는지를 물어보고, 이유를 충분히 말하면 "착한 아이"라며 칭찬해서 다시 앉도록 유도한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은 쉬는 시간이 따로 없다. 기자와 잠시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아이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선생님을 찾아와 "이거 잘했죠?", "사인펜 뚜껑 잃어버렸어요." "친구가 자꾸 연필로 제 공책에 낙서해요.", "선생님 내일 학교 나와요?"라며 질문을 쏟아냈다. 때론 황당한 질문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시해선 안된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작은 행동 하나에 상처받고, 그런 일들이 알게 모르게 반복되면 마음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4교시 수업을 하는 동안, 선생님은 단 5분도 자리에 앉아있지 못했다.
◆수업이 끝난 뒤
하교 지도에 나선 선생님을 보며, 기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교사라는 직업이 다른 어떤 직업보다 소명의식을 필요로 하지만 특히 초등학교 선생님, 그 중에 1학년 선생님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아계 선생님은 "수업시간 4시간을 고스란히 학부모도 아닌 외부사람에게 공개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너무도 이쁘고 귀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낸 부모들이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승락했다."고 말했다.
행여 외부인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평상시와 수업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쉬는 시간, 주위를 둘러싼 아이들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유치원이 재밌니? 학교가 재밌니?" 아이들은 무슨 엉뚱한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학교죠."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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