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문인수 作 '각축'

입력 2007-03-21 07:30:20

각축

문인수

어미와 새끼 염소 세 마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 따로 팔려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 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 안에서만 놉니다.

2월, 상사화 잎싹만 한 뿔을 맞대며 톡, 탁,

골 때리며 풀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입니다. 저러면 참, 나중 나중에라도 서로 잘 알아볼 수 있겠네요.

지금, 세밀하고도 야무진 각인 중에 있습니다.

뿔은 하나의 상징이다. 생각해보라. 염소에게서 뿔을 빼면 뭐가 남을까. 어디 염소뿐이랴. 소도, 양도, 기린도 뿔을 지닌다. 초식동물에게 뿔은 어떤 의미일까. 어릴 적 비쩍 마른 친구들은 달리기를 잘했다. 뚱뚱한 친구들은 맷집이 좋았다. 이도저도 아닌 친구들은 그 어떤 모멸감에도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이 있었다. 그렇다. 모두 보호색이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 줄도 모른 채 어린 염소는 머리에 달린 뿔로 '톡, 탁, 골 때리며' '끊임없이 티격태격' 논다. 온 가족이 찢어져 팔려갈 지경인데도. 안타깝다. 안쓰럽다. 이런 여린 마음을 감추려고 시인은 말장난(言弄)을 한다. '골 때리며, 풀리그로' 노는 어린 염소들처럼. 그러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겠지. 눈여겨볼 만한 건 시어들의 사용법. '각축'과 '각인'의 의미를 뒤집는 것은 기본이고, '새까맣게 어린' 녀석들은 털이 새까만 흑염소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어미 반경 안에서 논다'란 말의 의미도 겹이지만, 비유까지도 하필이면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다는 '상사화 잎싹'이다. 햐, 말 다루는 솜씨 정말 기막히구나.

장옥관(시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