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높고 가팔라서 해도 달도 떠오르기조차 힘들다는 천태산. 그 중턱에 제비집처럼 매달려 있는 운봉분교장에 찾아온 올봄은 유난스레 시끌벅적합니다. 선생님이 부임해 와 사택에다 턱 하니 세간을 내려놓고 굴뚝에 연기를 피워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년간, 이 분교장에 발령을 받은 선생님들마다 차를 몰고 산기슭까지 와서는 아스라이 하늘에 닿아 구름에 동동 떠가는 분교장을 올려다보고는 모두 되돌아갔으니까요. 교실에서 흘러나오는 글 읽는 소리에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며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비빗종뱃종 산새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분교장 울타리의 개나리들도 노오란 입을 모아 쫑알쫑알 구구단을 외웠습니다.
그런데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고 양지쪽 산벚나무가 하얀 꽃구름을 피워 올릴 때까지도 분교장의 공부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한 번도 울리지 않자 근처의 옥수수 밭, 담배 밭에서 일을 하던 아이들 부모들은 허리를 펴고 쉴 때마다 분교장 쪽을 바라보며 걱정에 잠겼습니다. 왜 종소리가 안 울리지? 글씨 말이네. 그래도 그냥 놀지는 않는 모양이던데…. 아이 부모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밭둑에 앉아 의논한 끝에 바우 아버지와 춘심이 엄마를 대표로 뽑고 산나물과 고구마라도 십시일반으로 거둬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뵙도록 하였습니다.
"선상님, 우리가 이래 와서 이런 이야기를 디리도 될랑가 모르겠심더만, 얄궂게는 듣지 마이소. 우리는 예, 밭고랑에서 허리 꼬부리고 일하다가도 학교에서 들리는 카랑카랑한 종소리만 들으면 저기 우리 아이들 공부 소리라 여기미 피곤을 잊어뿌리는 거라요. 그란데 선상님이 오시고 한 번도 종소리가 안 들리니…. 우리야 산도야지처럼 산비탈을 파묵고 사는 무지랭이들이지만 새끼들만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도회지 아이들처럼 잘 가르치고 잡습니더…."
바우 아버지와 춘심이 엄마가 사택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던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간 그 이튿날 아침, 숙직실 창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종이 교실 처마에 얌전히 내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햇살에 반짝반짝 빛을 내며 30분 간격으로 맑고 카랑카랑한 종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땡땡, 땡땡땡, 땡땡, 땡땡땡, 땡땡, 땡땡땡, 땡땡, 땡땡땡, 땡땡, 땡땡땡….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산새들도 바삐바삐 날고, 하늘의 구름도 부지런히 산꼭대기를 넘나들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분교장을 나서자마자 곧장 부모님이 일하시는 담배 밭으로 달려가 오늘은 수업을 12시간이나 받느라고 머리가 터질 것 같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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