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여행] 농사 시작할 때면 그 지긋지긋한 자갈줍기가...

입력 2007-03-15 16:43:04

따뜻해진 봄 틈사이로 풀들이 하나둘씩 솟아나면 농사철이 시작된다. 농사철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일꾼이 되어야 한다. 모든 식구가 매달려야 농사는 이루어졌다. 봄이 오기 전에 병충해를 막는다고 밭두렁을 태우는 일부터 시작해서 농사를 짓기 전에 자갈줍기가 연례행사가 되었다. 특히 자갈줍기는 아이들의 몫이라 할 만큼 책 보따리를 마루에 던져놓고 학교 숙제보다 더 단단히 해야 할 집안 숙제였다. 지긋지긋하고 재미없던 자갈줍기를 어른이 되어서도 또 하고 싶은 건 왜 그럴까? 목적이 다르면 수단이 즐거울 때가 있다. 순서가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 다는 걸 논밭의 자갈줍기에서 배운 덕택이다. 어린 시절 자갈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주워보자.

집 울타리 뒤 텃밭은 유난히 큰 돌덩이나 자갈이 많았다. 집안의 남새밭이나 길바닥, 옆집 봉구네 밭에도 자갈이 많았다. 가을 태풍이 지나고 큰 물이 몇 번 넘치면 자갈은 둑을 타넘고 논으로 밭으로 쏠려들었다. 특히 가을걷이가 끝나고 놀만하면 자갈 줍기를 해야 한다.

"오늘은 학교 끝나고 딴 데 새지 말고 자갈부터 주우야 된 데이." 아침밥을 먹다가 목에 숟가락 걸릴 소리였다. "아부지요, 오늘 덕만이 하고 진산에 덫 놓은 거 보러 가야 됩니더." "되았다. 낸주 가고 오늘 다 주 놔라" 그 말 한마디에 자갈이 원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고무신을 털털 끌며 책 보따리를 던져놓고 골목길로 나섰다. 학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도록 잔머리 굴린 걸 실천하기 위해서다. 골목길엔 경우, 제천이, 계집애 정순이가 보인다. 모두 1, 2학년 뺑이라 얕잡아 보이는 아이들뿐이다. "너그들 우리 논에 자갈 주우러 안 갈래?" 세 아이가 소꿉놀이를 하다가 멀끔히 쳐다본다. 영 마뜩찮은 표정들이다. 빙그레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땅콩 한 주먹을 내 보였더니 모두 눈빛이 달라졌다.

땅콩을 까먹으면서 학교 운동장보다 더 넓은 논에서 자갈을 줍기 시작했다. 삼태기에 자갈을 담아들고 나와 논둑에다 부으며 모았다. 그렇게 몇 번은 까불거리며 자갈을 줍던 제천이가 "히야, 내 똥 마렵다." 하면서 엉덩이를 싸매고 달아났다. 다른 애들도 도망가면 어쩌나하고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손톱에 반달만한 논빼미의 자갈을 줍던 경우, 정순이도 참을성 없이 "오빠야, 갈란다" 하면서, 딱 한 주먹 땅콩 값만 하고 꽁무니를 쳤다. "야이 가시나야, 니 걸리마 죽는데이" 뒷걸음질 치던 정순이에게 만만한 자갈돌을 핑하니 날렸다.

뙤약볕은 따갑고 혼자서 너른 논배미 자갈을 다 주울까 하고 울상이 되었다. 오늘은 눈에 보이는 자갈이라도 다 주워야 한다. 내일은 아버지가 홀쳉이(쟁기)로 논을 갈아엎을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 뒤를 따라 뒤엎어 놓은 흙에서 자갈을 또 골라내어야 한다. 그 글피엔 서천 아래 밭과 산비탈 텃밭이 기다리고 있다. 오히려 그 밭들이 논보다 더 넓어만 보였다.

텃밭은 시시 때때로 변하는 요술 밭이다. 엄마나 아버지의 생각 하나로만으로도 바뀌는 종잡을 수 없는 밭이었다. 그런 요술 변덕쟁이 밭이 또 새로운 밭이 되려면 어김없이 자갈줍기를 해야 했다. 시퍼런 보리가 피더니 또 어떤 땐 달콤한 꿀처럼 단 목화를 심고 한 쪽 모퉁이엔 고소한 땅콩이 심어졌다. 6월 초순경에 보리를 베어내고 목화를 심은 뒤 다시 보리를 파종한다. 파종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어떤 해엔 보리를 심지 않고 봄채소를 가꾸면 윗머리 한 빼미는 부추밭이 된다. 아랫머리 밭은 정월엔 고추씨를 뿌리고 파와 배추를 갈아 겨울에서 이른 봄 동안 채소밭으로 변한다.

변하면 변할수록 자갈줍기 노역은 끝이 없었다.

갈아엎어 놓은 흙더미에서 크고 작은 자갈이 밭둑가에 수북이 자갈더미로 남으면 바지게로 지고 냇가에 버렸다. 어둑어둑할 때까지 텃밭에서 자갈을 줍던 어린 날의 모습이 징그럽게 떠올라도 다시 주말농장 하나쯤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왜일까?

보통 주말농장은 봄에 상추'쑥갓'오이'호박 등을 심어 여름까지 수확한다. 8월엔 가을배추와 무를 심어 11월 말 김장철에 필요한 2모작이 가능하다. 만일 무농약 채소가 목적이라면 4모작, 5모작까지 가능하다. 40일 걸려 얻는 열무는 4월부터 10월 중순까지 5모작 농사가 가능하다. 50∼60일이면 수확하는 배추도 다모작용이다.

자녀와 함께하는 체험학습용 농사로는 감자'고구마가 제격이다.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게으른 사람들에겐 딱 좋은 작물이다. 4월 씨감자를 잘라 심었다가 6월 장마 전에 감자를 수확한다. 또 고구마는 5월 중순에 심었다가 10월 중순이면 먹음직스러운 결실이 생긴다.

대구농협은 오는 22일부터 3월 말까지 '주말농장'과 '주말과수원'을 분양한다. 19곳 2만3천 평을 10평 단위로 분양한다. 임대료는 평당 2,000∼7,000원선. (053)760-3171

대구 동구 미대동 구암마을에서는 밤나무와 포도나무를 분양한다. 밤나무는 5만 원, 포도나무는 3만 원이다.(053-982-8132) 팔공산 능금으로 유명한 제2석굴암 인근의 동산농장에서도 부사 사과나무를 분양한다. (054-382-4667)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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