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돈 안쓰는 선거를 위해

입력 2007-03-15 07:24:45

내 나이 칠십을 바라봅니다. 금호강 다리 위를 몇 번 갔습니다.

"저는 돈이 없어서 남들이 선거에서 쓰는 돈 바라만 봤어요. 그들에게 '왜 돈을 쓰느냐'고 말 한마디 할 수가 없었어요. 그들을 신고하려고도 했지요. 그러나 어느 누구 단 한 사람도 저에게 그들이 누구에게 돈을 주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돈을 받고 나더니 저를 대하는 태도가 360도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조합장 선거에 나밖에 없다고 출마하면 찍어줄테니 출마하라고 하더니, 언제부터인가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전 그때부터 1등은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놈의 돈 때문이죠."

"지역에서 인심을 잃지 않고 수십 년 동안 살아왔고 '이번 선거만큼은 선관위서 관리도 하고 뭔가 다르겠지.'라고 생각을 했지요. 그러나 역시 몰래 주고 몰래 받는 돈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돈을 받은 사람이 제보하기 전에는 알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처도 선거에 저가 지는 바람에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집에서 아파 누워 있습니다. 집사람이 처음부터 말렸어요. '우리는 돈이 없으니 조합장 선거에 제발 나가지 말자.'라고 무지하게 말렸습니다. 이번 만큼은 자신 있다고 저는 출마를 결심했고 역시 선거에, 돈에 지고 말았습니다."

"돈 선거 잡을 수 없습니다. 벌써 1년 전부터 1대 1로 주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어요. 밤에 자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돈만 쓰면 당선되는 이런 나라에서 살기 싫어서 집사람 몰래 죽으려고 금호강 다리 위를 몇 번이나 갔는지 모릅니다. 어차피 살 만큼 살았고, 이렇게 선거에 비참하게 져서 창피하게 살 바엔 죽기를 결심했죠."

"우리 집사람은 모릅니다. 내가 죽을 결심으로 다리 위를 몇 번 올라 갔는지. 그 놈의 운명이 무엇인지 지금도 이렇게 끈질기게 뛰어 내리지 못하고 살아 있습니다."

조합장 선거에서 떨어진 한 낙선자와 면담을 통해 위와 같은 말을 들을 수가 있었다. '선관위가 가지고 있는, 아니 내가 가지고 있는 선거법 위반행위 단속권한, 이 권한을 부지런히 열심히 성실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이렇게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에 따른 무거운 책임감이 밀려들었다.

'돈을 몇 억을 썼네.', '돈을 몇 번을 돌렸네.' 하는 소문이 무성히 돌아 다니는데도, 돈을 쓰고도 버젓이 당선되어서 조합장이라고 앉아있는 현실을 보며 거기에 대해 죽음으로 값을 다하려는 그 분 말씀을 듣고 나니 선관위 직원으로서 그분에게 무슨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이 모든 결과가 내 탓인 것 같아서 그 분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제 마음 속으로 굳게 약속을 했다. '선관위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길현도(경북선관위 지도과 조사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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