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산 천문대 1.8m 망원경 '와'…저녁먹고 둘러앉아 새끼도 꼬고
TV 개그프로그램 중에 '같기도'라는 코너가 요즘 인기다. 딱히 이런 것도 아니고 저런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소재로 웃음을 유도한다. 요즘 날씨가 그렇다. 봄이 성큼 다가온 것 같기도 하지만 겨울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기도 하다. 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마을을 굽어보는 보현산(1124m)에도 부끄러운 듯 봄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겨우내 얼어있던 실개천은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응달에는 아직 두터운 얼음이 심술궂은 표정으로 눌러앉아 있다.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보현산 정상에 자리잡은 보현산천문대를 찾았다.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탁 트인 전망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탄성이 쏟아진다. "엄마, 저 아래 금방 지나온 길이 마치 뱀같아요." "아빠, 구름이 훨씬 가까워보여요."
감탄은 천문대 안으로 들어서서도 이어진다. 천문대 이충욱 연구원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는 모습이 진지하기만 하다. 국내 최대를 자랑하는 1.8m 광학망원경도 신기하기만 한데 천문대 돔지붕이 열리고 망원경이 360도 회전하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쩌면 '로보트 태권V'를 떠올리는 개구쟁이 녀석들도 있겠다.
하지만 산 정상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탈하던 하늘이 갑자기 구름으로 뒤덮이더니 거센 바람과 함께 눈발마저 날린다. 돔지붕도 이내 닫힌다. 파노라마 풍경을 가슴 가득 담겠다는 욕심은 버릴 수밖에.
아쉬움을 남긴 채 다시 돌아온 마을의 저녁식사는 그야말로 별미다. 무농약 미나리밭 비닐하우스 안에서 먹는 싱싱한 미나리쌈과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에 왕후장상이 부럽지않다. 게다가 건강에 좋다는 고로쇠나무 수액까지 곁들이니 금상첨화다. 여기저기에서 아빠들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정겹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저녁, 마을 쉼터가 시끌벅적하다. 손에 침까지 묻혀가며 열심히들 새끼를 꼬아보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터라 생각처럼 안 된다. 기어이 조희순(72), 양영순(72) 두 마을 어르신들이 거들어준 뒤에야 모양이 갖춰진다. 어쨌든 고로쇠물 수액 한 통씩을 상으로 받은 박소연(10·여), 백용하(9), 이소현(9)이는 즐겁기만 하다.
산골의 밤바람이 꽤나 매섭다. '꽃샘추위에 설 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실감난다. 하지만 모두들 모닥불 옆에 옹기종기 모여 구운 감자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안주라봐야 굵은 소금밖에 없지만 막걸리 한잔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이장님, 마을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겁니다. 자주 찾아주세요."
이튿날 아침, 고로쇠나무 수액을 채취하러 다시 산에 오른다. 하지만 고로쇠나무는 도시에서 온 낯선 객들이 영 달갑지않은가 보다. 드릴로 뚫어놓은 구멍에서는 찔끔찔끔 감질나게 수액이 흘러나오고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한 모금의 물이 모인다. "고로쇠나무는 기온이 낮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수액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도 우리에게 좋은 물을 주는 아주 고마운 나무입니다." 허성수(39) 이장의 설명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나무야, 미안해.'
임고서원 답사를 마치고 대구로 돌아오는 길, 체험가족들 표정이 밝다. "우리 농촌의 희망을 본 것 같습니다. 꿋꿋하게 우리 것을 지키고 사시는 많은 농민들을 위해 도시민들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농촌에도 어서 '봄'이 오면 좋겠다.
이상헌기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