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15곳 지금은 어떤가?
상주 팔음산포도작목반은 지난해 재정경제부로부터 포도특구로 지정받고 동네 잔치를 벌였다. 주민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이제 살기 좋아지게 됐다."고 어깨춤을 췄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신대균(60) 회장은 "특구로 인해 마을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05년 곶감특구로 지정된 상주에선 곶감체험마을이 특구 밖에 있는 2개 마을에 조성되는 '이해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이면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피하기 위해 상주시가 일부 지역만 특구로 신청한 때문. 특구 선이 행정편의상 그어진 것이어서 특구 내와 특구 밖 곶감농가를 차별할 수 없다고 시 관계자는 털어놓았다.
경쟁력 있는 지역 특화산업을 육성하겠다며 정부가 도입한 '지역특구' 제도가 '특별하지 않은 특구' '경쟁력 없는 특구'로 전락했다.
전국에서 비슷비슷한 특구가 쏟아지면서 특구의 생명인 차별성이 사라져 도토리 키재기식에 지나지 않게 된것. 특히 규제가 일부 완화되는 것 이외에는 정부의 지원책이 전혀 없어 "특구 아닌 일반구" "그냥 대중구"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14일 경북도,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경북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12곳 등 전국에 특구 72개가 지정돼 있으나 지정만 했을 뿐 정부 재정 지원은 전무해 '특구 유명무실'을 부채질하고 있다.
실제로 재정경제부가 2004년 1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전국 24개 특구를 평가한 결과, 절반 이상인 15개 특구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별다른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이 특구공화국이지만
특구가 처음 지정된 것은 2004년 말.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과제로 지역특구 사업을 추진한다면서 대구약령시한방특구 등 6곳을 처음 특구로 지정한 이래 한달에 3곳 꼴로 특구가 생겼다. 2년 만인 지난 해 말 현재 전국 지역특구는 72곳. (표 1 참조)
한 지방자치단체당 최대 3개까지 둘 수 있어 앞으로 특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전국 최다 특구를 자랑하는 경북에서는 올해에만 14곳이 추가 신청할 계획이다.
초기에 지정된 일부 특구 중에는 특구 홍보효과를 업고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경우도 있다. 안동 산약특구는 지정 이후 집중적인 홍보와 웰빙 바람을 타고 매출이 2배가량 늘었다. 또 약령시한방, 패션주얼리, 안경 특구가 지정돼 있는 대구에서도 특구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름만 조금 다를 뿐 비슷한 업종들로 남발돼 차별성이 떨어지고 있다. 한약 및 의료관련 특구는 8곳이나 있고 포도·외국어특구는 4곳, 곶감특구는 2곳이 있다. (표 2 참조) 또 청송군과 예천군은 올해 안에 꿀사과특구와 애플밸리특구 지정을 계획하고 있지만 이미 충북 충주에 사과특구가 있는 상태다.
김종두 상주시 축산특작 담당자는 "특구를 지자체들이 앞다퉈 신청한 것은 지역 특산품의 홍보효과를 노린 것인데, 이름만 약간 차이날 뿐 같은 특산물 특구가 많다보니 이마저도 어렵다."고 했다.
사정이 이러하자 경상북도는 지난 해 6월 같은 특구의 남발을 막기 위해 비슷한 특구끼리 묶는 방안을 재경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결국 올 1월부터 인접한 지자체가 같은 특산물 특구를 신청할 때는 공동특구로 신청할 수 있도록 특구법이 개정됐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재원 없어 사업 축소되고
어렵게 특구 지정을 받은 지자체들은 기대했던 예산 지원이 전혀 없자 사업을 축소하거나 다른 용도의 특별사업비를 특구 사업에 전용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지정된 의성 마늘산업유통특구의 경우 특구 내에 조성할 계획이던 마늘연구소와 마늘역사·체험관, 곶감테마파크 등을 돈이 없어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다른 명목으로 받은 국비를 오미자특구사업에 끌어쓰고 있는 문경시는 당장 내년이 걱정이다. 2004년 신활력개발사업 1차 대상지에 포함돼 3년 동안 받고 있는 신활력사업비를 특구사업에 썼지만 내년부터는 돈줄이 끊기기 때문이다.
대게특구로 지정된 영덕군은 만성적인 교통난을 겪는 강구항 대게 상가를 살리기 위해 강구항 앞 3만 평을 매립, 주차장으로 확보키로 하고 32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재정자립도가 11.1%(2006년 기준)에 불과해 예산을 어디서 빼오나 고민만 하고 있다.
다른 특구들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비, FTA기금 등 다른 명목으로 지원된 국비보조금으로 근근히 꾸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발목잡는 규정만 있어
99만㎡ 규모의 상주 곶감특구에는 상주 전체 곶감 농가 1천165개 중 47%인 556개 농가만 포함됐다. 재배면적으로는 전체 740ha 중 18%인 134ha에 불과하다. 재경부가 특구 규모가 100만㎡ 이상일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거치도록 하는 바람에 복잡한 절차를 피하기 위해 시가 일부만 특구로 신청했기 때문이다.
결국 상주시는 특구에 관한 정부의 별도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특구지역 곶감농가에만 특별히 예산을 지원할 수도 없는 형편이 됐다. 오히려 10억 원을 들여 시가 추진하고 있는 곶감체험마을 조성사업은 특구밖 2개 마을이 대상이다.
김국래 상주시 곶감특구 담당자는 "정부가 특구에만 쓰라고 예산을 주면 모를까, 똑같은 곶감농가인데 특구지역에 있다고 해서 더 주고 없다고 해서 안줄 수는 없지 않느냐? 결국 특구마을은 별 혜택이 없다고 안달이고, 특구 밖 마을은 같은 곶감농가인데 소외시키지 말라고 난리여서 우리도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다른 지역특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9월 지정된 상주 고랭지신선포도특구는 전체 2천411개 포도농가 중 1천300개 농가만 특구에 들어갔다. 문경 오미자특구도 문경지역 전체 오미자 생산농가 402개 중 305개 농가만 포함됐다.
◆주민들 실망만 커지니
곶감특구로 지정만 되면 각종 지원이 쏟아질 줄 알았던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 주민들은 모두 무덤덤해졌다. 지난 5일 마을에서 만난 한 농민은 "처음엔 특구 안에 곶감을 주제로 한 영상관, 체험관 등이 들어서는 테마파크도 만든다고 해 기대가 높았는데 소문만 무성할 뿐 1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영천 한방특구도 사정은 마찬가지. 영천시가 한약유통시장을 새로 조성하고 한약재전시장 등을 짓고 있기는 하지만 한약상들의 기대는 낮다. 영천약령시협의회 여수화 회장은 "예산이 없어 중장기 계획을 만들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문경시 한 관계자는 "특구에만 따로 쓸 수 있는 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규제특례도 100% 되는 것이 아니여서 지금은 말만 특구이지 기대감은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될까?
지자체 특구 담당자들은 정부가 비슷한 특구 양산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제대로 된 특구를 지정해서 예산 지원을 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강조했다.
문경시농업기술센터 이우식 소득개발 담당은 "전국에 비슷한 특구가 널려 있는 상황에선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지역특구사업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 경쟁력 있는 특구를 지정한 뒤 예산·세제상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지역특구 2주년 기념행사로 열린 정책연구 발표회에서 "지역특구 사업이 특산물과 관광 관련 사업에만 편중돼 있어 특구 간 차별성이 없으며 단기적 효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본 처럼 교육·의료복지·연구개발 등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지역경제를 살리고 고령화·저출산에 따른 문제점까지 해소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중심이 된 특구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북도 최남섭 경제기획팀장은 "재정력이 취약해 특구사업 추진에 허덕이고 있는 도내 시·군이 많아 올 초 중앙정부에 특구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사회2부 최정암·안동 최재수·영덕 황이주·의성 이희대·상주 엄재진·정욱진·문경 박진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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