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만성신부전증 엄마 돌보는 아들의 기도

입력 2007-03-14 10:55:20

"엄마 콩팥 오래 버티게 해주세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머릿속에 되새기는 말입니다. 아픈 엄마(40)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 것. 아빠 없다고 놀리는 친구 앞에서 당당히 행동할 것. 용돈 없어 군것질 못할 때 초라해 보이지 말 것. 이 외에도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선은 이것만이라도 해 내려고요. 사실 친구들보다 공부를 잘 해 우쭐할 때도 많지만 그건 성적표가 나올 때 뿐이거든요. 또 아침에 이런 다짐을 하고 나면 엄마 얼굴보기도 훨씬 수월해요. 온 몸이 퉁퉁 부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아침상을 차리는 엄마의 얼굴을 대할 때면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이젠 울지 않으려고요. 남자는 가슴으로 울어야 한다고 목사님이 그러셨어요. 한 가지가 더 있네요. 아빠 같은 사람 되지 않을 것. 전 엄마 곁을 영원히 지키는 멋진 아들이 되고 싶어요.

엄마가 만성신부전증을 앓은 것은 지금 중학교 2학년인 제(14)가 태어나기 전이었어요. 다행히 장기 기증을 받게 된 엄마는 22세 때 신장 이식 수술을 했어요. 곱디 고운 나이에 피어보지도 못한 딸을 죽일 수없다며 외할머니가 갖은 노력을 해 신장기증을 빨리 받을 수 있었대요. 하지만 전 외할머니가 반갑지만은 않았어요. 외할머니는 엄마가 2세 때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버려 엄마를 돌보지 않았거든요. 그 후로 친척집을 전전했던 엄마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기숙사가 딸린 신발 공장에 들어가 일을 했대요. 생활비가 없었던 엄만 신장 이식 수술을 하고 나서도 공장일을 계속 하셨지요. 그러다 아빠를 만나 절 낳으셨어요.

전 한때 하느님이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세상은 공평하고 행복하다고···. 하지만 엄마를 볼 때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았어요. 어렵사리 생명을 연장한 엄마에게 아빠가 폭력을 휘두를때마다 너무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났거든요. 아빠한테 맞은 후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엄마를 볼 때면 밖으로 나가 미친 듯이 뛰었어요. 쿵쾅거리는 가슴을 치며 차라리 심장이 터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고 여린 엄마는 바보 같이 늘 아빠에게 돈을 뺏겼어요. 노름을 했던 아빠는 돈을 잃으면 언제나 술을 마셨고,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하고 종일 미싱 작업을 해 받은 돈 1만 원을 모조리 가져갔어요.

아빠가 엄마 속을 썩여서 일까요. 신장 이식 수술을 했던 엄마는 제가 8세 때 또다시 신장 기능을 잃었어요. 하지만 아빤 잦은 혈액 투석으로 혈관조차 찾지 못한 엄마를 내 팽겨 치고 노름을 계속 했지요. 전 아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한 공간에서 함께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렸으니까요. 전셋집을 빼 병원비를 대야 했던 우린 장애인 보호 시설에서 생활했어요. 그 곳에서 학교를 다니며 엄마 병원을 찾아갔죠. 아마 그때 쯤일 거예요. 아빠가 말없이 사라진 것이···. 엄마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복지단체에서 병원비를 대주고 장기 기증자를 찾아주자 아빠는 자취를 감췄어요. 그 후로 몇 번 찾아와 집을 부수고 난동을 피웠지만 엄마를 때리진 않았대요.

순하고 착한 엄마를 즐겁게 해 주는 일은 반에서 1등 한 성적표를 가지고 오는 거예요. 엄마는 박복한 부모 팔자 닮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하는데 전 그 말이 싫어요. 엄만 이젠 행복할 날만 남았거든요. 제가 비행기조종사가 되서 엄마 세계일주도 시켜드리고 병도 고쳐드릴 거예요. 그런데 요즘 엄마가 부쩍 자주 아파요. 면역 억제제를 먹고 있는데도 신장 기능이 다시 약해지나봐요. 그래서 매일 기도드립니다. 엄마의 신장 기능이 오래 오래 버텨주기를. 영원하지는 못하더라도 5년, 10년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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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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