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칩 민주주의.'
소파에 기대 감자칩이나 집어먹으며 TV에 나오는 대통령후보들의 유세, 토론, 정외홍보를 감상하면서 '누굴 찍을까'를 생각하던 60년대 정치용어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미국의 대권선거는 대륙횡단 철도를 누비며 驛(역)유세를 벌이는 발품선거였다. 이후 50, 60년대 TV정치의 등장으로 유권자들이 굳이 역 광장이나 길거리 유세장으로 나가지 않고도 집안 소파에 기대 감자칩이나 먹으며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는 세칭 '감자칩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TV선거 시대를 열었던 케네디'닉슨 간의 대권선거에서 등장한 감자칩 민주주의는 다시 90년대 중반 쌍방향 정치참여를 가능케 한 인터넷 사이버 유세시대가 열리면서 한층 심화되고 있다.
역사상 사이버 정치의 場(장)인 인터넷 홈페이지가 선거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일본 총선으로 꼽힌다. 1996년 5월 알렉산더 전 미국 테네시 주지사 등 대권주자들이 처음 불붙인 후보 홈페이지는 일본의 경우 자민당'신진당'사민당'공산당 등 모든 정치 세력도 경쟁적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같은 시기에 옐친과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가 홈페이지를 개설했을 정도다.
동년 10월 미국의 클린턴과 밥돌 후보의 대결 때 양측 캠프의 홈페이지에는 거부감을 주는 네거티브 공세보다는 흥미중심의 톡톡 튀는 홍보 전략이 가득했다. 인기 있었던 섹션은 퀴즈게임. '공화당 총무로서 돌 후보보다 더 많은 임기를 지낸 상원의원은 몇 명이나 되나'는 퀴즈를 내 은근히 오랜 경력을 홍보하는 식이다.
클린턴의 홈페이지는 미국인들이 마약, 섹스, 폭력에 시달리는데 넌더리가 나 70년대 시대의 '단란한 가정'에 향수를 느낀다는 사실을 간파, 홈페이지에 1번으로 가족문제를 제시하고 불리할 수도 있는 이복동생 로저 클린턴까지 끄집어내 가며 '가족'을 강조, 자신의 약점인 여성 스캔들을 잠재우는 효과를 노렸다. 솔직함과 건강한 비유퀴즈 같은 것을 통해 자신의 정치철학과 공략을 긍정적으로 설득하는 사이버 선거전을 펼쳤던 셈이다. 굳이 사이버인터넷 정치의 부정적 예를 든다면 패러디 사이트의 등장 정도다.
클린턴의 진짜 사이트는 'www.cg96.org'였으나 'www.clinton96.org'라는 클린턴 이름까지 적힌 가짜 사이트가 떠돌았다. 가짜 사이트에는 '클린턴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골프치기, 지구 밖에서 온 외교관 만나기'같은 비꼬는 이야기가 실렸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홈페이지에도 10년 전 미국 대선 때의 홈페이지 못잖은 다양한 섹션(콘텐츠)들이 망라돼 있다. 동영상, 어린 시절의 사진, 가족과 가정 등은 기본이다. 지지자들의 발언과 정치토론도 활발하다. 다만 '아직도…'싶은 게 있다면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UCC까지 등장한 21세기 한국정치판과 50년 전부터 감자칩 민주주의가 정착된 미국선거 풍토와의 수준 차이일까.
물론 인터넷 선거운동이나 후보 홍보 캠페인이 전부는 아니다. 실제 미공화당 밥돌 후보는 인터넷 선거 홍보에서 클린턴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대선 결과는 패배였다. 같은 시기 일본 역시 신진당의 오자와 이치로 당수 등 18명의 총선후보들이 모두 홈페이지를 만들고 활발한 인터넷 선거전을 펼쳤지만 결과는 오히려 인터넷 선거에 소극적이었다. 자민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네티즌이 확산되고 있는 사이버 선거시대에는 감자칩 민주주의가 더 깊이 뿌리내려 갈 것이다.
어제 여권 정치꾼이 '네거티브 한방이면 한나라당은 갈 수 있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썩은 정치의식을 다시 드러냈다. 한국 대선의 감자칩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미국이라면 이를 갈던 반미 진보세력들. 미운 남의 나라 것도 좋은 것은 배워라.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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