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권의 책]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가이도 다케루

입력 2007-03-08 16:44:12

일본 도조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은 심장이식 대체수술인 바티스타 수술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바티스타 수술의 학술명칭은 '좌심실 축소 성형술.' 그러나 이 수술 창시자인 R. 바티스타 박사의 이름을 딴 속칭이 더 알려져 있다. 이 수술은 확장형 심근증을 치료하는 것으로 비대해진 심장을 잘라내 작게 만든다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수술은 어렵고 위험은 크다. 수술 평균 성공률 60%. 높은 위험도 때문에 아예 수술을 않는 병원도 많다. 그런데 도조대학 의학부 부속병원 수술팀은 100% 성공률을 자랑한다. 미국 심장 전문병원의 권위자 기류 교이치를 외과 조교수로 초빙하고 병원 안에서 최강 스텝을 선발, 드림팀을 꾸린 덕분이다.

그런데 최근 잇따라 3건의 수술 사망이 발생했다. 의료과실인가? 의도된 살인인가? 집도의(醫) 기류는 병원 측에 가장 낮은 수준의 내부감시를 요청한다. 제 3자의 시선으로 원인규명에 나선 것이다. 병원 내부에는 수술 실패를 규명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팀이 있다. 그러나 이 팀에 의뢰하면 팀간 '정치적 문제'가 발생하고, 검시를 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많다. 무슨 말로 유족에게 해부를 설득할 것이며, 해부를 하고도 심장수술 이외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래서 제 3의 관찰자로 투입된 사람이 만년강사이자, 피가 싫어 신경과를 지원한 다구치 고헤이이다. 다구치는 수술 참관과 더불어 기류 교이치의 수술 스테프들과 일일이 면담조사를 펼친다. 물론 다구치는 범인 윤곽을 잡지 못하고 헤맨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수술 사망이 또 발생한다.

이 소설은 다구치의 면담 조사와 후생 노동성에서 파견된 의사 출신 공무원 시라토리의 조사과정에 관한 내용이다. 일본에서 미스터리 대상을 받은 이 소설은 작가적 상상력이라기보다 의사출신으로 알려진 작가의 지식과 의료계의 환경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작가가 복잡하고 정교한 가설과 증명, 즉 일반 독자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배경은 의사 출신이 갖는 의료정보와 의료 시스템의 밀폐성에서 기인한다.

사실 수술사망의 원인은 정밀한 검시 한번이면 단박에 드러나게 돼 있었다. 그럼에도 미스터리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적으로 여러 이해관계인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검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검시 시스템은 오직 산 자를 위해 작동한다. 설령 수술팀 스태프의 손에 환자가 살해됐다고 해도 '내부폭로'가 없는 한 밝혀질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유가족이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그래서 경찰이 개입하고 경찰 일을 하는 의사가 검시한다고 해도 헛일이다.

'경찰의(醫)는 경찰이 말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의사들에게 교묘하게 은폐된 범죄를 알아낼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기류의 수술 파트너이자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인 나루미는 미국의 검시 체계와 일본의 검시체계는 너무 큰 차이를 보인다고 비판한다. 한국의 검시 시스템은 '산 자를 위해 작동한다'는 점에서 일본과 비슷하다.

이 소설은 의료에 관한 이야기지만 딱딱하지 않다. 추리소설 형식을 취한 데다 작가의 지식과 필력이 굉장하다. 현직 의사로 알려져 있는 이 작가는 어쩌면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의료시스템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작품 전반에 현행 일본 의료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마룻바닥의 못처럼 튀어나와 있다. 무엇보다 일본 의료시스템이 투명했다면 이 소설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연쇄 수술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그러자 검시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작동했다. 그래서 원인을 밝혀냈다, 는 식이라면 이 재미있는 소설은 잉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는 재미있는 소설 하나를 잃는 대신 수많은 죽음의 원인을 밝혔을 것이고, 인간의 존엄에 한 발짝 더 다가섰을 지도 모른다.

소설 속 집도의(醫) 기류 교이치는 그런 점에서 멋있고 존경 스럽다. 자신이 집도한 수술 실패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조사를 의뢰하고,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약점까지 드러낸다. 그 뿐만이 아니다. 기류의 수술 장면과 생명에 대한 애착을 보노라면 감탄과 경외를 감추기 힘들다.

『오 케이 고. 기류의 신호와 함께 수술이 시작되고 뛰던 환자의 심장은 멈췄다. 심장대신 노란색 실린더가 움직인다. 기류의 손놀림은 논리적이다. 그의 수술엔 출혈이 거의 없고 메스엔 낭비가 없다. 그는 지옥을 다스리는 마왕처럼 움직인다. 화려하고 정교한 손놀림,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섬세한 선율을 연주한다. (중략)

환자의 심장박동이 없다. "카운트 쇼크 준비!!" 겨우 짜내는 기류의 목소리.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생명의 모래를 건져 올리기 위해 기류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춤을 췄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기류는 생명의 모래를 끌어 모으려 격투를 벌였다. 하지만 기류의 손에는 한 알의 모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기류는 눈을 감았다. 극채색의 시간이 멈췄다.』 -본문 중 수술 장면-

세상에는 기류와 같은 의사들이 많다. 그 혹은 그녀는 외과의사일 수도 있고, 신경과 의사일수도 있고, 소아과 의사일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기류'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박수를 보낸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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