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기자' 코너 신설합니다. 이 코너는 독자 여러분이 시민기자가 돼 참여하는 코너로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이야기를 싣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독자들은 시민의 시각으로 우리사회를 둘러보고, 전문가의 눈으로 특별한 분야를 접하는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나도 기자' 코너의 첫 번째 시민기자는 축구평론가 이주녕씨로 '건들바위가 다시 흔들릴까?'라는 주제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이주녕씨는 올해 80세로 대구 대신동에서 태어나 줄곧 건들바위(대구시 중구 대봉 2동 소재) 인근에서 살았습니다. 그가 10세였던 어느 날 친구들과 건들바위에 올라갔는데 바위가 심하게 흔들렸다고 합니다. 당시 목격자도 많았지만 대부분 별세했고, 건들바위가 흔들렸다는 사실이 영원히 묻힐 것 같아 우려하고 있습니다. 건들바위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와 전설처럼 남아있는 '흔들림' 이야기를 이주녕씨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합니다. -전문-
외지에서 찾아온 관광객이 첫 번째로 대구십경(大邱十經) 기념물 제 2호인 건들바위를 찾았다. 초라하게 서있는 건들바위 모습을 보고 "이것 보려고 여기에 왔느냐."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건들바위 주변에서 50여년 살아온 필자는 이 광경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건들바위 원형은 높이 12m(지상 6m'지하 6m 추정)에 둘레 20m로 보잘 것 없는 모양새에 도로공사로 외관 손실까지 입어 더욱 명승지의 이름을 초라하게 했다. 그러나 이처럼 초라한 모습에도 이 암석(巖石)을 대구십경 중 하나로 지정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마도 고려 문종 때, 별똥별이 떨어진 운석(隕石)으로 알려져, 자연사 연구에 학술자료가 되기 때문에 아닌가 여겨진다.
◇ 건들바위 유래(由來)
1997년, 당시 대구 임업 시험장 장이었던 이정웅씨가 "대구예술, 월간지에 실은 입암(立巖)을 찾습니다."라는 글은 건들바위 유래 일면을 연구한 자료였다.
지역사를 연구해온 이정웅씨가 뜻밖에도 조선 영조(英祖)시대에 펴낸 대구읍지(大邱邑誌) 방리(方里)에서 당시 건들바위 주변 마을이 입암 이라는 것을 찾아내, 근처에 있는 바위로 인해서 마을 이름이 지어 졌음을 밝혀낸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같은 바위를 두고 '입암', '입석(立石)' '삿갓바위' '건들바위' 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졌을까. 그것은 틀림없이 환경변화에 따른 생김새와 저마다의 독특한 지리적 여건에 따라 표현한 이름이 아닌가한다.
◇ 삿갓바위'건들바위 유래를 찾아서
조선초기 사학자 서거정의 시제에 의하면 별똥별에서 떨어진 운석 모양새가 마치 삿갓 같다해서 삿갓바위 이름으로 지어진 것이라 하였고, 그리고 입암에 앉아서 낚시를 하였다는 것을 본다면, 주변으로 방대한 강물이 흘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 강이 흘렀는지 추적해 보자. 우선 약200년 전에는 대구지역에 지금 흐르는 신천이 없었다. 다른 강이 흘렀다면 가창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용두방천을 거쳐 건들바위, 동산파출소, 달성공원 방향으로 흘러 팔달교 부근 금호강으로 합류한 대구천 지류가 아닌가 추정된다. 만약 이런 추론이 옳다면 옛 대구천은 인공하천이 아닌 자연하천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 많은 사학자들이 삿갓바위를 별똥별 운석으로 추정 하지만 필자는 조심스럽게 이 학술엔 동의 하지 않는다. 건들바위가 운석이라면 1m 거리를 두고 서있는 절개지 언덕의 대형 암종과 달라야 하는데 동일하다는 것은 운석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그것뿐 아니라 과학, 물리적으로 증명해보면, 운석은 대기 중에 돌입한 유성이 다 타버리지 않고 땅에 떨어진 것으로, 철, 닛켈, 합금과 규산염 광물이 주성분이므로 현 건들바위 암질과는 현저한 차이를 가진다.
그리고 삿갓바위 아름에서 건들바위 이름으로 옮긴 시기는 언제일까. 아마 우산형으로 된 삿갓이 오랜 풍화작용으로 인해 무너진 후부터 바꿔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하필이면 건들바위로 부르게 된 사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선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현실적으로 흔들리는 바위이고, 또 하나는 바위 자체의 불안전한 모양새 때문이다.
◇ "건들바위가 흔들렸다"
이 고장에서 살아온 옛 사람들은 흔들렸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흔들리는 장면을 직접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존의 대구시민 대부분은 신빙성이 없고 전설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바위가 흔들리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다.
70년 전, 필자가 10세이던 어느 날이었다. 소학교 친구와 함께 도보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놀이터 건들바위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그날 일기 예보가 틀린 탓인지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한산한 가운데 먼저 바위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위 둘레에는 굵은 새끼줄이 감겨있었고, 마른 명태가 꽂혀 있었다. 바위 밑에는 제사 음식물이 너절하게 흩어져 있는 것을 봐서. 새벽 제례의 흔적이 아닌 가 느껴졌다. 이곳 제례는 죽은 사람의 원혼과 한을 풀어주는 의식이 대부분이며, 때로는 무당이 굿을 하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계곡에는 연꽃이 피여, 노란나비 흰나비가 춤추고, 한쪽 계곡에는 아낙네들이 삼감오오 모여서 빨래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잠시 바위 주위에서 머물고 있을 때이다.
"우리 건들바위 꼭대기에 올라 가볼래?"하는 친구의 한마디에 그만 직답으로 호응하고 말았다.
소학교 4학년 어린 아이에게 가파르게 서있는 바위를 타고 정상 도전에 나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절벽에 매달려 몇 번 죽음의 갈림길에 섰지만, 끝내 정상에 올라섰다. 친구도 우여곡절 끝에 정상을 밟은데 성공했지만 무감상태에 말귀를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되어있었다. 내가 혼자 올랐을 때는 바위가 흔들리지 않았는데 친구가 오르자 바위가 갑자기 흔들렸다.
바위가 흔들리자 밑에서 우리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와~하고 터졌다. 어떤 구경꾼들은 만세까지 외쳤다. 우리가 벌떡 일어나 내려다보니 그 환호는 우리를 향한 외침이 아닌 흔들리는 바위의 신비함을 보고 외친 소리였다.
"여기서 죽는구나." 그 생각뿐이었다.
겁에 질려 나는 내려간다 하면서 바위를 타고 나려가면서 친구는 덜덜 떨고 있었다. 이윽고 또 다시 환호성이 들렸는데, 살펴보니 흔들리던 바위가 멈췄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는 바위가 흔들린 원인과 멈춘 원인을 알지 못했지만 중학교에 진학 하고서 비로소 바위 꼭대기에 무게를 가해야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건들바위는 다시 흔들릴까?
근년에 와서 지역사를 연구해온 학계가 삿갓바위를 두고 요동치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지역 사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정원재씨가 '19세기 중반 학술연구'에서 삿갓바위 위치는 지금 그 자리가 아닌 침산동과 칠성동 부근이라는 지명지도를 내놓아 지금까지의 학술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면밀한 조사와 검증작업으로 명확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 세계 각국은 관광개척에 몰두하면서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관광 수입 길을 열고 있다. 경주에서도 또 하나의 명승지를 개발, 보문단지 5만 4천 평에 짓고 있는 '신라 밀레니엄 파크'가 관광지 목적으로 올 4월이면 개장된다는 소식이다. 이 공사는 신라가 가장 부흥한 8세기의 모습을 재현한 민속촌이라는 점에서 올해 경주 관광지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시도 비록 규모는 작지만 과거사를 파헤쳐 미래 지향적인 역사 문화도시를 조성한다는 의도에서 지금까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장소가 되어버린 건들바위(대봉동)의 과거사를 명소를 명소로 되찾자는 경관사업이 올 봄부터 펼친다.
지금 서있는 건들바위 주변 1천M2공간에 길이 120m 폭 8m에 물이 흐르는 실개천을 비롯해 뒤편 절개지에 대형 인공폭포가 들어서고 아래지대는 대형 안개분수와 식수조정 등 다양한 시설을 잦추어 새로운 명소로 만든다는 의욕이다.
이 공사가 옛 모습을 찾기 위한 사업이라면 무엇보다 건들바위의 정체성을 되찾는 것이 우선되어야한다.
지금 대구 일부 시민들은 과연 흔들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필자의 전망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흙을 파내고 원상 복원작업을 한다 하지만 지하에서 30년 동안 묻혀 버린 바위가 황산탄소에 쌓여 손상을 입지 않았을까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 년 아니면 수백 년 세월이 흐르면서 풍화작용을 받는다면 다시 흔들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이주녕(축구평론가)
◇ 건들바위 주변, 시민공원으로(9면 박스)
건들바위는 대구시 중구 대봉 2동 소재 갓바위로 1982년 '대구 기념물 제 2호'로 지정됐다. 지정 면적은 962㎡로 바위 옆 절벽과 함께 대구분지 지반구조를 잘 보여준다. 건들바위는 바위의 모습이 삿갓 쓴 노인과 같다고 해서 입암(笠巖), 즉 삿갓바위라고도 불려왔다. 그러나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 현재는 삿갓모양이 남아 있지 않다.
바위 앞으로 냇물이 흘렸는데, 1776년(정조 1) 대구판관으로 부임한 이서가 이 일대 하천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면서 물줄기를 신천으로 돌려 물이 흐르지 않게 됐다. 제방을 쌓기 전에는 맑고 깊은 냇물이 흘러 낚시를 하며 풍류를 즐겼던 경치 좋은 명소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대구10경(大邱十景)의 하나로서 서거정(徐居正)의 '입암조어(笠巖釣魚-삿갓바위에서 낚시)'라는 시제(詩題)는 이곳을 두고 읊은 것이다.
건들바위는 기자신앙(祈子信仰)의 대상이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까지 점쟁이와 무당들이 치성을 드렸으며, 부녀자들이 아들 낳기를 기원하며 많이 찾았다고 한다.
대구시 중구청은 1994년 건들바위 종합조경공사에 이어, 올해 '건들바위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건들바위 주변 120m에 걸친 이번 정비 사업은 노후화 된 시설물을 재정비하고, 옛 모습을 상징적으로 복원해 시민들에게 볼거리와 휴식공간을 제공한다는 목표다. 특히 노후화 되고 인공적인 수경시설을 자연에 가깝게 복원, 도심 속 자연생태계를 회복한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와 관련 대구시 중구청은 '건들바위'와 관련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오래 전 사진이나 이야기를 채집, 대구십경의 하나인 건들바위를 중구의 문화관광 명소로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문의 및 제보 : 053)661-2851(대구시청 공원 녹지계)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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