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계여성의 날…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입력 2007-03-08 10:37:06

8일은 99회를 맞는 세계여성의 날. 곳곳에서 여성의 인권신장이 이뤄졌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인식이 많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20대부터 50대까지 미혼과 기혼, 직장여성과 주부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참석자

류은연(29) 벤처 기업 회사원

박선아(34) 변호사

김미진(가명·42) 회사원

조남수 (49) 전업주부

곽경숙(56) 대구시 교육청 중등교육 과장

---직장 생활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이를 극복했던 방법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힘겨웠던 점이 있었다면?

▷김미진=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모두 아이를 맡을 상황이 안돼 전업주부인 친구에게 2달 된 아기를 맡겼다. 그러나 출산 전과 똑같은 업무에 시달려 약속된 시간에 아기를 찾으러 가지 못할 때도 많았다. 게다가 남편은 언제나 부수적으로 도와주는 입장밖에 되지 않아 전적으로 육아는 내 몫이었다.

▷박선아=현재 시댁과 친정에서 번갈아가며 2살 된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육아문제가 더 이상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모두의 일이 됐다.

▷류은영=미혼이지만 현재 업무량을 생각하면 육아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서 아직 결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주위에도 이 문제로 결혼을 미루는 친구들이 많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육아가 더이상 여성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가정에서 남편의 외조는 어떤가? 육아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어떤 것이 있을까?

▷곽경숙=자영업을 했던 남편의 외조가 컸다. 아이들을 병원에 한 번 데려가 주는 것도 맞벌이 주부에게는 엄청난 도움이다. 물론 육아는 내가 책임졌지만 작은 부분의 배려가 정신적 안정을 가져다 줬다.

▷김미진=임신 8개월 때도 옆자리의 남자 동료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웠다. 그 사람은 자신의 부인이 임신했을 때도 담배를 핀 것으로 알고 있어 말도 하기 힘들었다. 육아가 가정의 책임으로만 국한시킬 문제가 아닌 만큼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에서는 보육시설을 마련해 두고 부모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으로서 차별이나 편견을 받은 것은 어떤 게 있었나? 그리고 어떻게 해결했나?

▷박선아=편견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직장 여성 대부분이 여성성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포용력이 있어야 하고 성격도 털털해야 하지만 외모는 다소곳한 것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같은 상황 하에서 똑같은 능력을 발휘해도 여성성이 있으면 훨씬 더 인정을 받는다. 전문성 뿐만 아니라 성역할까지 강요받는 셈이다.

▷류은연=영업직이어서 거래처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어떤 때는 업무의 공신력마저 무너질 때가 많다. 여자니까 우선은 신뢰를 안하는 것 같다. 보수적인 지역 정서로 무장(?)한 50, 60대 남성들에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고 본다.

▷조남수=여성으로서의 차별보다는 '전업 주부'인 것이 차별일 경우가 많다. 전업주부라고 하면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알뜰하게 살림을 사는 주부의 역할을 하찮게 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누구나 쉽게 하는 일이 주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직장여성이 집안일도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직장인과 아내 또는 아이의 엄마로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변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곽경숙=인간관계가 형성되는 회식문화가 시급히 변해야 한다. 밤에 술로 이뤄지는 인간관계로는 양성평등의 실현은 물론 직장문화를 바꿀 수 없다고 본다. 남성들도 집에 가서 양육을 책임질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사회적으로 만들어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김미진=여성들이 남녀 평등을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 없다. 결국 사회 생활에서 여성 스스로가 능력으로 인정받으면서 남성들을 자각시켜야 한다. 남성들과 같은 업무를 해내는 직장동료를 보면서 맞벌이 하는 아내의 고초를 이해할 때만이 이들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행동으로 보이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 김미진 씨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사진를 촬영하지 않았고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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