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게
김제현
안다
안다
다리가 저리도록 기다리게 한 일
지쳐 쓰러진 네게 쓴 알약만 먹인 일 다 안다
오로지 곧은 뼈 하나로
견디어 왔음을
미안하다, 어두운 빗길에 한 짐 산을 지우고
사랑에 빠져 사상에 빠져
무릎을 꿇게 한 일
쑥국새, 동박새 울음까지 지운 일 미안하다
힘들어하는 네 모습 더는 볼 수가 없구나
너는 본시 自遊(자유)의 몸이었나니 어디든 가거라
가다가 더 갈 데가 없거든 하늘로 가거라
뒤돌아보지 말고
군색하거나 쫍친 구석이라곤 없는, 확 풀린 가락. 활달하다 못해 출렁거리는 시상의 전개가 미간을 잡아당깁니다. 이런 변화의 율격에서 전통 시가 형식에 드리운 퇴영의 그늘을 찾기는 어렵지요. 시조는 정형률이기 전에 '인간율'입니다.
몸은 곧 생명이거니,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 몸에 바치는 한 편의 참회록이 처연하게 행간을 이끕니다. 주저 없는 직설 화법의 힘. 다리가 저리도록 기다리게 한 일, 지쳐 쓰러졌을 때 쓴 알약만 먹인 일, 어두운 빗길에 한 짐 산을 지운 일―세속에 던져진 몸은 늘 이렇듯 가혹한 고통으로 삶을 기억합니다. '안다'와 '미안하다' 사이의 낙차. 미묘하게 뒤섞인 긍정과 회한의 감정이 의외로운 정서적 파장을 낳습니다.
본디 自遊(자유)의 존재인 몸이 좇는 바는 떠돎이요, 그 떠돎의 미학인 것. 어디라 매인 데도 거칠 데도 없는 몸이 끝내 가 닿을 곳은 영원의 미지인 하늘 뿐. 비록 여위고 지친 몸일망정 더 갈 데가 없으면 가야지요. 뒤돌아보지 말고!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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