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 바람이 분다

입력 2007-03-07 07:24:32

春寒(춘한)이 매섭다. 국내 기상 관측 사상 100년만의 따뜻한 겨울이라더니 봄의 초입에서 느닷없이 한겨울 추위를 만났다. 27년만에 가장 추운 驚蟄(경칩)을 기록하기도 했다. 먼 길 떠난 겨울이 길을 잃어 헤매는 걸까. 갓 겨울잠 깬 개구리가 깜짝 놀라 퉁방울 눈을 마구 끔벅거릴 모습을 상상하니 재미있다. 아파트 화단 양지녘에 서둘러 핀 어린 진달래 세 송이가 이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있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따뜻하고 화사한 봄은 늘 이렇듯 꽃샘추위 끝에 온다.

며칠전 아름다운 한 청년이 멀고 먼 길을 떠나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폭 테러에 희생당한 군인 윤장호. 11년의 미국 유학생활을 누구보다도 건실하게, 열심히 살았던 젊은이. 어떡해서든 병역을 기피하려는 기회주의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땅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청년이다. 특전사 베레모를 쓴 사진속 눈빛이 저토록 또랑또랑 해맑은데….

그 부모님의 가슴에 팬 상처가 어떠할까. 斷腸(단장)의 고통도 그보다는 덜할 것 같다. 남은 세월 동안 그들이 겪을 상실의 아픔을 생각하니 마음이 묵지근해진다.

어제는 행복과 웃음꽃을 피우던 가정이 오늘은 눈물과 한숨만 있는 적막강산으로 변해버리는 예가 허다하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가슴을 뜯으며 말한다. "내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재작년 우리나라에도 왔었던 미국의 조엘 소넨버그. 올해 28세인 그는 생후 20개월때 자동차 사고로 전신의 8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50여 차례 수술에도 그의 모습은 여전히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큼 일그러져 있다. 하지만 조엘은 지금 전세계를 다니며 희망의 傳令(전령)으로 일한다. 비록 코와 입술,귀,손가락과 발가락이 불에 녹아내린 흉한 모습이지만 "내 흉터는 사람들이 한 번 보면 나를 잊지 못하도록 하는 큰 기회가 되죠" 라며 미소짓는 그에게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을 보게 된다.

꽃샘바람 부는 이 계절, 불현듯 프랑스 시인 발레리의 말을 떠올려본다. '바람이 분다.살아야 겠다'. 그리고,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 겠다'던 말라르메의 시구도. 조엘처럼"인간이 극복하지 못할 시련은 없다"고 믿을 때 감당하지 못할 시련은 더이상 없는 것 아닐까.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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