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리포트)이동국 평가 '일단 긍정적'

입력 2007-03-06 09:06:56

최근 데뷔전을 가진 이동국의 플레이에 대해 미들즈브러의 지방지 이브닝 가제트는 '브릴리언트(BrilLEEant)'라고 표현했다. 영어 '브릴리언트(brilleeant)'에 이동국의 성, '이(Lee)'를 합성한 단어인데 그 속뜻을 잘 모르겠다. '레딩을 상대로 한 잊을 수 없는 카메오의 데뷔', '꿈같은 출발' 같은 표현이 기사에 쓰인 것만 봐도 칭찬은 칭찬이다. 프리미어 리그 첫 무대에 서자마자 골대를 맞추는 위협적인 슈팅을 보였으니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알 수 없는 것은 칭찬의 정도다.

'브릴리언트'는 '러블리'와 더불어 영국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형용사다. 사전을 찾아보면 '빛나는, 찬란한, 훌륭한' 등의 뜻으로 풀이되지만, 생활 속에선 대단하지 않은 일에도 습관처럼 붙는 표현이다. '브릴리언트 웨더(weather, 날씨)', '브릴리언트 셔츠' 같이 마음에 든다 싶은 대상을 표현할 때 쓴다.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는 단어가 '러블리(lovely)'다. 무엇이 그렇게 매일 사랑스러운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일이 순조롭게 처리될 때나 영국인들은 '러블리'를 입에 달고 산다.

축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의 축구 중계방송 해설가는 차분한 모범생 스타일의 한국 해설가와 다르게 자주 흥분하곤 한다. 경기가 고조되면 해설가의 목소리는 커지고 말은 빨라진다. 프리미어 특유의 빠른 공격이 펼쳐지며 선수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하면 외국인인 필자에게는 오직 '브릴리언트'와 '러블리'만 들린다. "'브릴리언트 패스' 블라블라 '러블리 찬스' 블라블라 '브릴리언트 슈팅' 블라블라' 러블리 플레이'블라블라……."

영국인 친구에게 이동국에 관한 기사를 보여주며 여기에서 쓰인 '브릴리언트'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I'm not sure(확신하지 못한다)'라고 대답한다. 역시 영국인다운 답변이다. 이들은 모르면 모른다고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확신하지 못한다고 한다. 'I don't know(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에 일종의 수치심을 느낀단다. 그래서 영국인이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라고 말하면 예의상 '땡큐'라고 말하고 흘려버리는 것이 편하다. 말을 하는 영국인들도 상대가 그 말을 믿어줄 것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도 친구의 답변이 정답인 것 같다. 원문을 다시 잘 읽어보니 이동국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고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기사의 전부다. 기사의 요지는 '이동국에 대해서 아직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긍정적'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이동국에 대한 영국 언론의 확신있는 평가를 보기 위해서는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브릴리언트'라는 첫 평가를 받은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다.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프리미어 리그에 적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동국이 곧 프리미어 리그의 '러블리(loveLEE)'로 불리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된다.

박근영(축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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