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삼성 회장 8천억 사회 헌납은…

입력 2007-03-06 07:26:45

기업의 '나눔' 실천…이미지 제고 큰 역할

이건희 삼성 회장의 8천억 원 사회 헌납에 대해 한 쪽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한편, 다른 한 쪽에서는 불법 대선 자금 문제, 에버랜드 전환 사채(CB) 편법 배정 논란, '안기부 X파일' 등을 무마시키기 위한 전시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완화시키는 데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말해 보시오.(경희대 수시, 숙명여대 수시 기출문제)

▶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개념과 기원

프랑스 말로 노블레스(Noblesse)는 '귀족 또는 고귀한 신분'이란 뜻이고, 오블리주(Oblige)는 '의무'란 뜻이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귀한 신분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것으로, '귀족은 귀족다운 처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프랑스 격언에서 나온 말이다. 특권에는 사명이 따르고 신분에는 의무가 수반되는데, 특히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남보다 더 많은 의무와 책임 및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초기 로마 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 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 강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더욱 확고했는데, 한 예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2차 포에니 전쟁 중 최고 지도자인 콘술(집정관)의 전사자 수만 해도 1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으나. 제정(帝政) 이후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면서 발전의 역동성이 급속히 쇠퇴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 간의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전쟁과 같은 총체적 국난을 맞이하여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제로 1,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천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 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가 전투 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6·25 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6·25 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할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사회 봉사단의 발족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시작했다. 기존의 사회 공헌 활동이 일회적이고 전시적인 자선 차원의 기부 행위가 주를 이루었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기업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대세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기업의 이익과 일자리 창출 자체가 사회 공헌이므로 별도의 봉사 활동을 위한 시간과 돈을 굳이 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 공헌 활동은 단순히 비용 측면의 부담이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 향상에 따른 이익 확대와 연결되는 행위이다. 또한 장기적인 사회적 투자인 동시에 기업의 의무이다. 즉, 기업이 사회적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결국에는 모든 잠재적 고객, 지역 사회의 신뢰와 친밀감을 형성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업이 저지른 불법 행위를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책임을 의무로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 행위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잠재우고 법의 칼을 피해 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8천억 원을 사회에 헌납한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삼성이 '안기부 X파일'로 불거진 불법 대선 자금 제공과 전환 사채 편법 증여 등 불법행위와 반 삼성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임시방편적인 방식으로 이건희 회장의 사재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면, 이것은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법에 의한 심판은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법 행위에 대한 법적 진실을 가리는 것과 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책임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것을 기회로 삼성이 각종 불법 혹은 편법 행위를 중단하고, 진정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할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기업의 사례

△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의 창립자인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악마, 독점왕, 세계 최고의 갑부, 그리고 세계 최고의 자선가 등 수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다닌다.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업계를 독점해 세계를 지배한다는 악평도 있지만 가장 존경받는 부자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철저히 실천하며 상속세 폐지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등 미국 사회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을 보여 주고 있다.

MS는 운용 체계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 경쟁 업체들을 차례로 무너뜨렸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많은 악명을 얻게 되었다. 윈도우와 함께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팔아 경쟁 프로그램인 넷스케이프를 몰락하게 했고, 미디어 플레이어를 통해 리얼 플레이어를 파산 지경에 이르게 했다. 최근에는 검색 엔진 시장까지 진출하는 등 소프트웨어 왕국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2000년 1월 부인과 공동으로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여, 2004년 10월까지 220억 달러를 이 재단에 출연하였다. 이 금액은 그들의 전 재산 460억 달러의 절반 가량이다. 이와 같이 자신이 누린 특권을 사회에 환원하는 그의 태도는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 사회에 부를 환원하고 불평등을 개선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라는 그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빌 게이츠 재단이 관심을 쏟고 있는 분야는 개발도상국의 질병 치료, 교육, 도서관 확충 그리고 미국 북서부 지역의 발전이다. 이 중에서도 말라리아 백신 개발, 에이즈 퇴치 운동등과 같은 질병 치료 부문에 가장 많은 기부를 하고 있다. MS의 빌 게이츠를 비롯한 미국 기업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모습은, 기업이 사회에서 획득한 부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그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 스웨덴의 대재벌 발렌베리

스웨덴의 대재벌 발렌베리는 소유 기업만으로 스웨덴 주식 시장의 절반을 구성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경제적 파워를 가지고 있으며, 150년 동안 스웨덴의 산업과 금융을 지배해 온 유럽 최고의 재벌 가문이다. 그러나 스웨덴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발렌베리는 유럽 최고의 재벌 가문이지만, 스웨덴 최고의 부자 가문은 아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자신들이 일군 부(富)를 발렌베리 재단에 기부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특히 발렌베리는 스웨덴의 과학 기술 발전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데, 과학과 기술만이 스웨덴을 생존시키고 역동적인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초 과학 분야의 스웨덴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두 발렌베리 재단의 도움으로 초기 연구 경력을 시작한 과학자들이라는 사실이 과학에 대한 발렌베리 재단의 관심을 보여준다.

발렌베리 재단 가운데 가자 규모가 큰 크누트앤앨리스발렌베리 재단은 소유 자산만 300억 크로네(약 4조 200억 원)로 노벨 재단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이 재단은 발렌베리의 2세 크누트가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1917년에 설립한 것이다. 이후 크누트의 동생들도 자신들의 이름을 딴 재단을 각각 설립함으로써 재단을 통한 부의 사회 환원은 발렌베리 가문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발렌베리는 소유 기업의 경영 성과가 재단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사회에 환원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발렌베리 재단은 이렇게 쌓인 수익금을 스웨덴의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쓰고 있다.

제공 : 송원학원 논·구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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