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이 아름답다는 것 "이젠 알 것 같아요"

입력 2007-03-05 07:17:28

"옆 사람과 등을 기대세요. '땅 봤다, 하늘 봤다.' 라고 말하면 돼요."

"어구구, 허리가 아프네요. 노인들은 좀 더 조심해서 해야겠어요."

지난달 28일, 동일교회에는 10여 명의 중년 여성들이 전통 놀이에 푹 빠져있었다. '동대문을 열어라', '고사리 꺾자' 등 오랜만에 하는 전통놀이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는 '노인교육 전문지도자 과정'의 마지막날 프로그램. '아름다운 노년문화연구소'(소장 정경숙)에서 마련한 것으로, 참가자들은 앞으로 교회 안팎에서 노인들을 지도하게 된다.

앞서 진행된 프로그램은 '노인의 심리적 이해', '상담과 대화기법' 같은 학술적인 부분을 포함, '나'에 대해 재발견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다.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는 '내 안의 보석 찾기', 생애 동안 가장 잘 한 일과 가장 후회스러운 일을 떠올려 표현하는 '내 생애 되돌이표', 죽은 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해주기 원하는지 표현하는 것, 남은 생애에 대해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내 인생의 터널 통과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적 지식에 앞서 자신에 대해 새삼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윤정(59) 씨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인 '촛불'을 별명으로 정하고 내 인생을 콜라주로 표현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조순현(55) 씨는 노년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늙어가고 주름이 지는 것을 복된 과정이라 생각하게 된 것. 노인관도 바뀌었고 시어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생겼다는 것. "노인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했는데, 노년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평균수명이 80세 이상으로 늘어난 지금, 60세 이후 20여 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 아름다운 노년문화연구소는 노인의 자아찾기와 노인에 대한 편견 깨기에 나서고 있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중·장년층 정체성을 찾기 위한 '살맛나는 인생을 위한 길목 아카데미', '노인교육 전문지도자과정', '죽음준비교육 전문지도자 양성과정' 등이 3월부터 본격 가동된다.

장례와 죽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장례지도사 양성과정'도 마련했다. 그동안 소규모 교회 공동체 등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일반인에게도 개방하게 된 것.

아름다운 노년문화연구소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재발견한 기쁨'에 대해 입을 모은다.

지난해 말 삼덕교회에서 열린 '살맛나는 인생을 위한 길목 아카데미'에 참석한 이성희 씨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 후기 인생에 나이 들었다고 주눅 들거나 삶을 무의미하게 살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나이 먹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성숙한 시간이고 큰 선물임을 깨달았다.'는 것.

도정숙 씨 역시 마찬가지 고백을 했다.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아 담대하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바뀌고 싶다는 이유로 애칭을 '대담이'라고 지었다."면서 "아름다운 노년이 되기 위해 많이 베풀고 더 많은 도전도 해야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기에 가능한 일이다. 심리치료사, 미술치료사, 집단상담사 등 각 분야 석·박사들로 꾸려진 강사진은 헌신적으로 프로그램에 참가, 중년부터 노년까지 자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실제로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을 키워온 한 중년여성은 처음엔 도화지 가득 회색빛으로 칠하더니 미술치료 후 색색깔의 화사한 꽃이 피어있는 풍경으로 바뀌기도 했다. 아름다운 노년문화연구소 정경숙 소장은 이 과정이 중년여성의 자아찾기의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묻혀있던 자아를 찾게 되면서 자유감과 기쁨을 찾게 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서울시는 위탁기관을 통해 '웰 다잉(well-dying) 전문강사'를 양성하고 있지만 대구에는 아직 노년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아름다운 노년문화연구소 정경숙 소장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가정과 사회에서 당당한 역할을 찾아가는 중·노년 문화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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