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세상] 포도나무를 베어라

입력 2007-03-01 13:21:06

한 여자가 기차 플랫폼을 서성이고 있다. 누군가를 찾는 듯한 여자의 눈빛이 공허한 허공 속에 부서지고 나면 그녀를 보고 있는 한 남자를 카메라가 응시한다. 그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뒤로 주춤 물러선다. 결국 여자는 혼자 기차에 오른다. 민병훈 감독의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매우 독특한 영화이다. 독특함이라는 수식어는 영화가 표방하는 스타일이나 질감을 지칭하지 않는다. '구원'과 '용서'라는 낯설고 진중한 주제를 이 영화가 정면으로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대학의 학생인 '수현'은 건실한 예비 신부로 등장한다. 성서의 한 구절을 줄줄 외우는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그 어떤 불안도 없는 듯 말끔해 보인다. 그런 그의 눈 앞에 "가라면 갈 수 있어? 멈추라면 멈출 수 있어?"라고 묻는 존재가 등장한다. 그만 두게 될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동기생 '강우'가 새롭게 그의 삶에 성큼 들어서게 된 것이다. 강우라는 인물은 과연 신이란 무엇이며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가 그 근원에 대해 질문한다. 게다가 그의 주변에 범람하고 있는 소문은 여자 관계와 연루되어 있다. 실상 강우라는 인물은 '수현'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해 '포도나무를 베어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수현'이라는 한 인간이 갖는 다양한 갈등의 분신이자 면면에 가깝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주인공의 분신이라는 점은 영화의 첫 장면과 다시 조응한다. 수현이 보고 발길을 돌린 그 여자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인 '수아'일 수도 있고 그녀와 닮은 다른 여자일 수도 있다. 수현은 성직자의 길을 가기 위해 사랑했던 여자와 결별하고 그녀는 결국 사고로 죽음을 당하고 만다. 중요한 것은 성직자가 되기 위해 아니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과 접촉하기 위해서는 이 과거의 상처와 해후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민병훈 감독은 여기서 '수아'를 닮은 여자 '헬레나'와의 화해를 주선한다. 헬레나 역시도 애인을 두고 온 여자로서 수현의 갈등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자이다. 자신의 내면을 닮고 자신이 상처 입힌 애인의 외모를 꼭 닮은 그녀를 통해 수현은 스스로를 용서하고 자신을 구원한다. 결국 미래라는 오지 않은 시간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역설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용서, 구원이라는 추상적 개념어의 무게처럼 이 영화는 우리가 평생 살면서 회피하고만 싶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질문에 대해 감독이 제시하는 삶의 태도이다. "깃털처럼 가볍게." 민병훈 감독은 진지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것이 곧 삶을 살아가고 신성한 존재와 접촉하는 지름길임을 보여준다. 이는 한편 하루키식의 쿨과 결별하는 독특하면서도 근본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세트 촬영을 거부하고 현장감을 살리고자 애쓴 촬영 역시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민병훈 감독은 특별한 화면의 기교없이 담백하고 정직하게 질문의 중앙으로 침몰한다. 가라앉은 그 깊이 가운데서 깊이감 없는 그 화면 속에서 시간은 융해되고 미래와 과거는 화해한다. 이 독특한 영화의 감각은 우리 영화 사상 유례없는 면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벌이 날다', '울지마 괜찮아'에 이은 이 세 번째 작품으로 민병훈 감독은 이미 고유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듯 하다. 향기에 관한 그의 네 번 째 작품을 기대감으로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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