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디지털 3·1절

입력 2007-03-01 11:50:13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아라….' 매헌 윤봉길 의사가 1932년 훙커우(虹口)의거 직전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의 일부다. 몇 해 전 전문이 공개된 이 유언시는 그동안 활자나 사진으로 접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최근 UCC 바람을 타고 네티즌들이 동영상으로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면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해마다 3'1절을 맞지만 이제는 판에 박은 듯한 국경일이 아니라 '디지털 3'1절'시대로 접어든 느낌이다. 조국을 위해 혼신을 바친 선열들의 정신과 후손들의 염원을 담은 동영상들이 인터넷에 넘쳐난다. 중국'일본의 역사 침탈과 왜곡에 강하게 맞서는 우리 젊은이들의 氣槪(기개)가 디지털과 맞물려 엄청난 열기를 모으고 있다. 의미조차 모르고 그냥 지나치던 국경일이 이제 디지털로 인해 제 모습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개인 사용자가 직접 제작해 발표하는 UCC(User Created Contents)는 지난해부터 전 세계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콘텐츠다. 의거 직후 윤 의사가 체포돼 끌려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의 眞僞(진위) 논란을 촉발시킨 것도 개인 블로그와 UCC의 힘이다. 일제의 사진 조작설을 담은 동영상이 사이버공간에 확산되면서 최근 한 출판사의 경우 이 사진을 역사 교과서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 콘텐츠 중 '윤봉길 의사 사진 조작' 관련 UCC는 무려 55만 명이 시청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역사교재로 쓰겠다며 원본을 보내달라는 교사들의 요청도 1천여 건이 넘었다고 한다. '요코 이야기'를 비판한 UCC나 독립군이 부른 애국가'가야금 애국가 등을 담은 UCC 등도 보인다. 이런 분위기는 무단 반출된 우리 문화재 환수를 위한 모금운동으로까지 이어질 정도다.

◇물론 이로 인한 逆作用(역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역사적 사실을 분간하지 못하고 자칫 감정과 억측에 치우치는 사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든 흥밋거리의 자작 콘텐츠의 대명사로 치부되어온 UCC가 대중의 결속을 촉발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상의 변화가 놀랍기만 하다. 디지털의 진화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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