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88년, 해방된 지도 62년이 됐지만 1천여 채에 달하는 일본식 가옥과 대봉배수장, 조선식산은행 등 일제시대의 흔적들은 도심 곳곳에 남아있다. 거리문화시민연대가 펴낸 '대구 신택리지'를 중심으로 일제 혹은 일본인에 의해 지어진 대구 도심의 식민시대 건축물 등을 살펴본다.
◆사회 인프라
일제가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기반 시설들은 거의 사라지고 중구 대봉동 수도산의 대봉 1호배수지와 반야월역 등 일부가 남아있다.
▷대봉배수지=대구에서 처음으로 수돗물을 공급한 곳으로 1918년 3월 중구 수도산 기슭에 세워졌다. 당시 공사비로 48만 5천 원이 들었다. 이 일대에는 배수지 1·2호기, 염소투입실, 배수지 집합정 등 건물 4곳이 남아있다. 수돗물은 당시 대구 인구 4만 명에게 1인당 801ℓ를 공급할 수 있는 양이었지만 한국인 부자와 일본인에 한정 공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염소투입실은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근대 건축물이다.
▷달성공원=조선시대 토성이었던 이곳은 1907년 일본인들에 의해 신사와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일본 정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게 됐다. 중앙 원형광장의 형태와 배치는 일본 도쿄의 우에노 공원과 거의 비슷하다. 특히 달성공원 동·서편에 심어져 있는 6만여 그루의 왜향나무(카이즈카)는 대표적인 일본 조경수로 근대 식민지 개척시대를 상징한다.
▷경북대병원 본관=대구에 남은 일제시대 건물 중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크다. 이 건물은 1933년 경북대 병원의 전신인 경북도립병원이 공립 대구의학전문학교로 바뀌어 개교하면서 현재 위치에 자리 잡았다. 한국 근대 의학교육의 역사를 보여주며 건축사적, 교육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산업은행 대구지점(중구 포정동)=1931년 지어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건물이었다. 조선식산은행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대표적인 식민지 수탈기구였으며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정책금융기관이지만 건물만큼은 원형이 잘 보존돼 있고 건축사적 가치도 높다.
◆일본식 가옥, 학교
중구 삼덕동 일대는 일제시대 식민통치 행정기관들의 관사와 사택이 밀집되어 있었다. 2, 3층 규모의 근대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관사는 개인 주거용으로 많이 활용돼 아직 1천여 채나 남아있다. 전통양식과는 다른 2층 목조가옥이나 다락, 창고가 있는 복층구조의 관사들은 속칭 '적산가옥(敵産家屋)'으로도 불린다. '적의 재산'이라는 뜻. 중구 남산1동 대구향교 인근의 육군관사와 삼덕동 일대 옛 공무원 관사 20여채, 부자상인 사택 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중 1943년 지어진 대구삼립정공립보통학교(현 삼덕초교) 교장 관사는 약간의 수리를 거쳐 현재 YMCA 미술관인 빛살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상인들의 건물도 적지 않다. 1935년 지어진 중구 북성로 2가 삼국상회(현 대원석유)와 1934년 건립된 태평로 2가 마루보시 운수회사 건물(현 태성키친) 등이 대표적.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각급 학교들도 산재해 있다.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중구 대봉동 옛 공무원연금공단 후생관 자리에는 1923년 지어진 대구상고 본관과 강당이 남아있다. 경북대 사대부중 본관과 강당도 1923년 대구사범학교로 개교 당시 지어진 건축물이다. 1972년 2월 화재로 벽돌 구조부만 남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원형대로 복구됐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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