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에 '행복 나뭇짐' 한 짐씩 지고…
봄은 소리없이 다가온다. 그 옛날 회재 이언적 선생이 거닐던 독락당(보물 413호)에 핀 노란 산수유를 보고 나서야, 언 땅을 뚫고 솟아난 들풀에 화들짝 놀라고서야 스스로의 아둔함을 깨우친다.
지게를 지고 산에 오른다. 주섬주섬 나무들을 주워 한짐씩 지게에 올려놓고 나니 일어서기가 힘들다. 조그만 개울에 놓여진 징검다리조차 아이들에게는 만만찮은 도전이다. 그래도 처음 해보는 '나무꾼놀이'에 지게는 차마 내려놓을 수 없다.
금방 해온 나무로 모닥불을 피운다. 토실토실 알밤이 빨간 모닥불 속에서 익어간다.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새까맣게 타버린 껍질을 벗기고 가족들의 입에 넣어주는 군밤은 사랑이다. "엄마, 집에 가서도 밤 구워주세요. 너무 맛있어요." "그러자꾸나. 엄마도 어릴 땐 군밤 참 좋아했단다."
김정희·한석봉 선생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는 옥산서원(사적 154호)의 예절교실은 뿌듯하다. 명현거유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에서 제대로 절하는 법을 익히는 모습이 꽤나 진지하다. 아이들 모습이 대견스러운 듯 부모들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민박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 마을회관에 모이자 저마다 민박집 자랑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조기매운탕 주시던데 그 집은 뭐 드셨어요?" "저희는 된장찌게 먹었는데 방이 너무 따뜻해서 좋아요." 농촌의 넉넉한 인심에 벌써 마음은 부자다.
방패연은 만들기가 까다롭다. 마을 어르신들이 미리 다듬어 놓은 댓살을 붙이고 실만 매달면 되지만 이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우근(47) 마을 사무장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가르쳐주지만 2시간이 꼬박 걸린다. 얼레까지 만들어 놓고 나니 시계는 밤 10시를 훌쩍 넘는다.
그래도 그냥 자기에는 아쉽지 않은가. 마당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누가 보면 저녁 굶었다 하겠다. 휘영청 달빛을 안주 삼아 권커니 잣커니 막걸리 한잔에 어느새 정이 든다. 산촌의 밤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마음은 훈훈하다. "오늘 꼭 자야 됩니까?"
아뿔싸! 산새 지저귐에 깬 아침, 체험객들의 마음이 괜시리 우울하다.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이슬비가 원망스럽다. 간밤 공들여 만든 연을 어떻게 날리지? 모두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지 않았나. 모두의 갈망을 하늘도 외면하긴 힘들었나보다. 아침식사를 마치자 언제 그랬냐는 둥 먹구름은 멀리 사라지고 따사로운 햇빛이 벌판을 가득 메운다. 가족들의 소망을 담은 연들이 춤추는 모습에 마음마저 후련해진다.
활터에 부는 바람은 절로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시위를 당기는 팔에도 힘이 잔뜩 들어간다. 그렇지만 '골드'를 쏘겠다는 각오는 욕심일 뿐이다. 화살은 과녁을 애써 피하고 가족들의 응원이 부끄럽다. 물수제비 뜨기, 제기차기, 떡메치기도 마음대로 되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그래도 상품이 걸린 가족대항전인지라 모두들 나름대로 명예를 걸고 열심히들 한다. "아빠, 잘했어요. 그래도 꼴찌는 아니잖아요." "미안하구나. 다음에는 꼭 실력을 보여주마."
아쉽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꼭 다시 올게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다음에는 저희 마을에서 농사체험도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버스 창밖 손을 흔드는 주민들에게 답례하는 도시민들은 벌써 여름을 기다리는 눈치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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