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공동으로 개발한 '차세대 고교 경제교과서 모형'을 두고 재계와 노동계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로잡는다는 개발 의도와 지나치게 기업편향적이라는 비판이 논쟁의 핵심이다. 교육·학술계에서도 절차상의 문제, 개발 의의와 내용 등을 두고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고 있다. 논란은 교육부의 인쇄 중단, 저자명 삭제 요청, 노동계의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과 노동 쟁점 중심의 교과서 개발 추진 등으로 이어지면서 경제정책의 문제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경제교과서 모형 개발의 과정과 내용은 물론 쟁점이 되는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쟁점 하나하나가 논술이나 면접 등에서 문제로 나올 수 있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발 과정의 문제
경제교과서 모형은 교육부와 전경련이 지난해 2월 '경제교육 내실화를 위한 공동협약'을 체결한 뒤 각각 5천만 원씩 투입해 한국경제교육학회와 함께 개발했다.
논란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교육부와 전경련이 공동 개발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교과서 모형이라고 하지만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다는 점, 향후 교과서 개발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는 점 등에서 교과서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이런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보도자료에서 '모형 교과서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의 교과서에서 볼 수 있듯이 별도의 참고서가 필요 없이 교과서만으로도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하도록 상세형 교과서로 개발되었다.'면서도 '모형 교과서는 3월부터 고등학교 현장에서 참고자료로 사용될 예정이며 향후 새 교과서 개발의 편찬 체제 및 서술 방향 등의 모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전경련의 교과서 모형 개발 소식이 나오자 성과를 높이 사는 사설이나 칼럼이 쏟아졌다. '얼마 전에 새 경제 교과서 모델이 선보인 것도 재계의 성과로 꼽을 만하다. 경제단체는 오래전부터 반시장·반기업 정서 근원지의 하나로 현행 경제 교과서를 지목해 왔다. 재계 안팎에선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전경련은 재경부·학계와 공동으로 114개 교과서를 분석해 잘못 기술된 446곳을 찾아내고, 이를 토대로 교육부와 함께 1년 만에 새 교과서를 만든 것이다. 재계가 정부를 설득해 얻어낸 결실인 셈이다.'(신문 칼럼) 여기서 한 술 더 떠 '교과서의 전범(典範)'이라거나 '단순한 참고자료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경제 교과서는 검인정이다. 전교조는 "검인정 제도는 출판사나 단체가 교과서를 만들어 교육부에서 공포한 심의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것인데 교육부가 스스로 교과서를 발간한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전경련과 공동 협약을 맺은 것부터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따갑다. '이 문제는 사실 교육부가 전경련과 5000만원씩 분담해 경제교과서 모형을 개발키로 협약을 맺었을 때부터 충분히 예견된 것이다. 전경련이 교과서 제작에 참여하겠다는 의도는 보지 않아도 뻔했기 때문이다. 모형개발을 위해 구성한 경제교과서발전자문회의 위원들부터 경제5단체에서 추천한 사람들 일색이었다. 그러니까 전경련과 교과서 개발협약을 맺은 교육부의 행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재벌들의 임의단체에 불과한 전경련에 학교 교육을 맡기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전경련이 주요 경제주체여서 그 의견을 반영하는 차원이라면, 왜 같은 경제주체인 노동계, 소비자단체의 의견은 교과서에 담지 않는가.'(신문 사설)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하듯 노동계가 노동조합의 입장 등이 반영된 경제 교과서 모형 개발을 들고 나왔다. 뒤늦게 절차의 부적절성을 자인한 교육부는 저자명에서 교육부를 빼달라고 했지만, 노동계가 전경련의 경우와 같은 제안을 해 오면 거부하기 힘든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내용과 영향력에 대한 찬반
경제교과서 모형은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기존 교과서의 부정적인 시각을 바로잡는다는 의도에서 개발됐다. 내용을 두고 찬반 진영에서 불꽃이 튄다. 우리 경제의 큰 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이념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찬성 측에서는 반시장적·반기업적, 정부와 노동자 중심으로 기술돼 기업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온 경제 교과서의 올바른 수정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을 칭찬한다. '새 경제 교과서는 현장사례와 체험자료를 풍부하게 활용했다는 점, 시장경제를 부인하고 반기업정서를 조장하는 내용 등을 개선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 할만 하다. 무엇보다 내용을 재미있게 편성해 딱딱하고 어렵다는 인상을 주는 경제를 쉽게 이해 및 접하도록 하고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한 점이 돋보인다. 균형감각을 가진 교과서로 공부할 때 균형감각을 가진 인재가 육성된다.'(신문 사설)
당연히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우리 정부와 여당은 반기업 정서를 배경으로 대기업 때리기에 골몰했다. 대기업을 규제 대상으로 몰아붙인 결과는 저조한 투자와 줄어든 일자리다. 이런 점에서 새 교과서 모형을 배우고 익혀 경제 기(氣) 살리기를 실천해야 할 당사자는 바로 정부 여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다.'(신문 사설)
반대하는 쪽에서는 지나치게 기업편향적이어서 정부와 소비자라는 다른 경제 주체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경제원론에서 경제 삼주체는 정부와 기업, 가계이다. 이들 경제주체는 시장에서 만나 자유롭게 생산·분배·소비활동 즉, 경제활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새 경제 교과서는 경제주체가운데 정부와 가계의 역할을 축소 또는 부정하면서 기업의 역할만을 강조했다. 정부가 스스로 자신들의 시장심판역할을 부정한 꼴이 된 것이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 11일 국정브리핑에서 균형 잡힌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이 나왔다면서 홍보까지 하고 있다. 정부가 재계의 이념을 홍보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신문 칼럼)
기존 교과서가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현행 고교 경제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살펴본 사람은 반기업 반시장적 편향성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 반기업적 편향이 될 수는 없다. 재벌의 문어발식 기업 확장과 과잉투자, 정경유착을 지적한 것도 한국 현대경제사의 비틀린 실상을 있는 그대로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반기업 반시장적'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경제 교과서에서 무엇을 가르치란 말인가?'(미디어 오늘 칼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말해 보시오.(2001 고려대 면접고사)
△ 시장 질서하에서 자유로운 경쟁과 정부의 규제 중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가.(2003 수시2 서강대 면접고사)
△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원리를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자신의 생각을 말하시오.
△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사회, 도덕, 경제 교과서가 어떻게 현실 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지 설명해 보라.
△ 교육의 세계화는 어떤 것이며,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2001 서울대 면접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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