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삶의 여백에 담은 깊은 지혜의 울림 -대화-

입력 2007-02-24 07:24:57

삶의 여백에 담은 깊은 지혜의 울림 -대화-/ 박완서와 이해인, 방혜자와 이인호/ 샘터 펴냄

"···그때 아들을 잃고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사실 남편 보냈을 적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장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남들 살 만큼 살다갔구나, 그렇게 생각 했거든요.··· 삼 개월 뒤 아들을 보내자 세상이 달라 보였어요.···오로지 술만, 맥주만 마셨는데, 그래도 맥주에 칼로리가 있긴 있었나 봐요. 죽지 않고 견딘 것을 보면" (소설가 박완서·77)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남자로 태어나 보고 싶어요. 이번 생에 여자로 살아 봤으니까 다음 생엔 남자로 살아 보면 조금이라도 다른 걸 느끼고 깨닫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인 이해인 수녀·62)

소설가 박완서, 수녀시인 이해인, 빛을 통해 생명의 근원에 다가서는 화가 방혜자, 한국 최초의 여성 대사(주 핀란드 대사, 주 러시아 대사)를 지낸 역사학자 이인호. 우리 사회의 큰 누이 같은 네 명의 지성이 솔직 담백하게 너른 가슴을 열었다. 이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또는 일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몇 안 되는 스승이자 역활 모델이다. 문학, 종교, 역사, 예술 분야에서 자신이 연마해온 경험담과 그동안 마땅히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던 여성의 고충, 개인적인 갈등과 아픔, 소중한 인연 등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젊은 여성들에게 삶의 나침판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 남성 4명의 삶의 경륜을 담은 (2004)에 이은 두 번째 대화집이다. 앞선 대화가 행복, 예술, 신앙, 가족, 사랑, 시대에 관해 연륜 있는 눈으로 폭넓고 따뜻하게 짚어냈다면, 뒤따른 대화는 슬픔, 문학, 기도, 역사, 교육, 여성 등 현실 속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소설가 박완서와 수녀시인 이해인의 대화에는 문학가나 종교인으로서, 더 나아가 어머니, 딸,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과 아픔이 담겨있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슬픔, 신앙, 문학, 사랑, 이웃 공동체, 기도, 나이 듦, 죽음에 관한 솔직하고 다정한 이야기들이 가슴을 적신다.

화가 방혜자와 역사학자 이인호의 대화에서는 같은 듯 다른 두 인물의 대비가 무엇보다 흥미롭다. 일찍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해온 여성 선각자라는 점에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하지만 대담 내내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공통된 화두를 놓지 않는다. 유학 시절, 역사, 예술, 여성, 남성, 교육, 공동체, 나이 듦,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극과 극이 서로 통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엿볼 수 있는 묘미가 있다. 284쪽, 1만1천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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