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가나다순 정리했다 난리법석

입력 2007-02-24 07:30:21

대학 입학 할 당시 우리 집에서는 만화방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편하게 장사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고심 끝에 만화방을 차리게 되었다. 사실 내가 어릴 때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고 있으면 어머니는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달려와 엉덩이를 때리곤 했다. 그 이후론 어머니 무서워 만화방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화방을 하고 나서 나는 가게를 봐준다며 공식적으로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신일숙, 황미나, 이현세, 허영만 등 어릴 때 읽지 못했던 만화를 실컷 읽었다. 처음 만화방을 시작했을 때는 손님이 꽤 많았다. 늘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면 앉을 곳이 없을 정도였다.

대학을 도서관학과(지금의 문헌정보학과)를 다녔던 나에게 친구들은 우스개 소리로 나중에 할 것 없으면 만화방 주인하면 된다고 했고 그에 힘입어 만화책정리를 학교에서 배운 데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밤중에 대대적으로 만화책 서가를 옮기고 학교에서 배운 데로 저자명 가나다순으로 멋지게 정리를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손님들은 보던 만화가 없어졌다고 원성이 자자했고 어머니는 가장 많이 보는 책을 눈에 잘 띄는 곳에 손이 잘 가는 곳에 두어야 매상이 많이 오른다고 말씀하셨다. 그랬다. 어줍잖은 지식으로 정리하겠다고 나섰던 내가 어머니의 노하우인 손님의 지갑을 여는데는 부족했음을 느낀 대목이었다.

지금은 컴퓨터와 케이블 TV등에 밀려 만화방을 문 닫은 지 오래 되었지만 그 만화방으로 인해 내가 대학공부를 마쳤고 지금은 한 사람의 사회구성원으로 자기 몫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 중에 하나인 만화방도 언젠가는 '연탄에 구운 불고기 집'처럼 추억 상품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그럼, 나는 그곳 만화책 속에 묻혀 미소짓고 있겠지.

하진아(대구시 수성구 황금동)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