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진애는 집을 향해 '어디냐? 몇 평이냐?'고 묻는 대신 '누구냐?'고 묻는다. 집을 공학이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질문이 가능한 배경은 같은 시기에 지어진, 같은 모양의 아파트라도 사는 사람에 따라 집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사실 집을 보면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알 수 있다. 집의 모양과 가구와 물건의 종류, 흩어져있거나 배치된 모양만 봐도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책은 여러 가지 모양의 집에 대해, 아파트에 대해, 한옥에 대해, 집안 구석구석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하고 있는데, 집을 통해 '사람살이'를 이야기한다.
대갓집 한옥의 부엌 동선은 어째서 길고 복잡했을까? 부엌엔 찬모와 의모가 있었고, 손님을 맞는 청지기와 집을 관리하는 마름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일을 나눠하니 좀 길고 복잡해도 괜찮았다. 물론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아파트의 부엌이 잘 정비된 '공장' 같은 것은 그만큼 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주부의 소비 경제력에 기업들이 '물타기' 한 측면도 있다. 어떻게든 주부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고, 주부의 입맛에 맞게 아파트와 냉장고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거장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집은 기계다.'고 말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집 역시 기계처럼 빈틈없이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과 행동력을 얻었다. 산업화와 함께 등장한 아파트가 동선(動線)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기계적 측면'을 고려해 지어졌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잘 나가는 작가 김진애는 건축가다. 그녀는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동선이 짧아야 좋은 집이다.'는 고정관념이 있다고 말한다. 동선이 짧으면 공간을 넓게 쓰고,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생각이 꼭 옳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동선이 짧으니 만남이 적고, 만남이 적으니 이야기가 적고, 이야기가 적으니 정(情)낼 일도 줄어든다는 말이다. '적어도 한옥의 동선은 아파트 동선의 세 배가 된다.' 한옥과 아파트는 정(情)에 있어서도 세 배는 차이가 난다고 해석하면 틀릴까?
산업화와 함께 동선 짧은 집, 효율을 극대화한 집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효율성 높은 아파트가 집을 '잠만 자는 공간'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다. 집은 다만 먹고 자는 공간, 나머지는 대부분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요즘 생활패턴을 강화하는데 동선 짧은 집도 한몫을 한 것은 아닐까? 빈틈없이 있을 것만 있게 한 집과 여지를 남겨놓은 집은 동선뿐만 아니라 체험에도 차이가 난다.
옛날 집과 요즘 아파트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아마도 마당일 것이다. 마당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둘 수 있는 공간이다. 아무 일 하지 않고 내버려둬도 이상하지 않고, 빗자루 하나 없이 비워 두어도 낯설지 않다. 말하자면 '마당은 비어 있는 방', 즉 여백인 셈이다. 이 마당(여백)의 유무는 사람살이에도 많은 차이를 낳는다.
작가는 마당의 쓸모를 이야기하면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예로 든다. TV 드라마엔 어째서 마당 있는 한옥집이 유난히 자주 등장할까? 마당이 곧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만들려면 마당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각자의 방에서는 침묵 혹은 부부의 대화뿐이다. 그러나 각자의 엄격한 방에서 벗어나 '여유의 공간 마당'으로 나오면 부모와 자식간, 삼촌과 조카간, 할머니와 손자간, 주인집과 셋방 집간에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작가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 그처럼 풍부한 이야기와 풍문, 훔쳐보기와 흉보기가 많은 것은 거기 마당이 있고, 수도가 있기 때문이다. 마당은 개인에게 어느 정도 독립적인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면서 상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니 여러 세대가 살 수도 있고, 다소 낯선 이웃이 부대끼며 살 수도 있다. 마당이 사람간에 거리를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다. 현대식 아파트의 거실은 마당이라기보다 방에 가깝다. 이 공간은 마당과 달리 핵가족에게만 허용되는 좁은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입주 전 휑한 아파트를 구경하거나, 이사 전 빈집을 둘러보면 '좁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막상 벽지를 바르고, 가구를 들여놓고 보면 '생각보다 넓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작가는 바로 이 점을 '구석의 힘'이라고 본다. 공간은 둘러 볼 때가 아니라 나누어 쓸 때 그 실제 크기와 쓰임새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집은 스쳐가거나, 구경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가 사는 공간이란 말이다. 그래서 빈집은 집이 아니라 건축물이며, 사람이 들어가 살 때 비로소 집은 완성된다.
이른바 '집구석에 처박혀 있을 걸'이라거나 '내 집이 제일 편하다.'는 말은 집을 깔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있기에 집이 완성되고, 집이 있기에 내가 완성된다는 의미일는지도 모른다. 구석구석에 낯익은 자신의 물건을 채워놓은 곳,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 곳, 곧 내 아지트이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내 집 마련'에 그처럼 기를 쓰는 지도 모르겠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