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만학도 배움의 '인생 2막' 열어
"중학교 졸업하고 38년 만에 고등학생이 돼 교실 의자에 앉는 순간 전율이 흘렀습니다."
21일 대구 경신정보과학고에서 졸업식을 맞은 만학도 서대원(55·수성구 만촌동) 씨는 2년 전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등교한 첫날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는 전교 학생회장 출신에다 대학 전면 장학생이라는 자랑스런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독한 학력 콤플렉스에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부친의 실직과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6남매 중 다섯째인 서 씨는 결국 '중졸(청구중)'로 중도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양돈일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이른 새벽, 통금 해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춰 자전거에 잔반이 가득 담긴 죽통을 싣고 시내에서 반야월 양돈장까지 페달을 밟았다. 군 제대 후 경주 한 목장에서 양돈부 관리일을 맡을 정도로 성실성을 인정받은 그는 결혼 후 대구로 돌아와 20여 년째 주방설비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 아들 형제를 두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꾸려왔지만 모자란 배움은 늘 그를 주눅들게 했다. "제가 앞에 나서서 일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데, 옆에서 장(長) 자리로 떠밀어도 차마 '중졸'이라는 말이 입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없는 구실을 만들어 자리를 고사해야 하는 심정은 정말 참담했습니다."
그의 '인생 2막'은 이런 회한에서 시작됐다. 2005년 지인을 통해 알게된 경신정보과학고 성인부(2년제)에 입학하게 된 것. 학생이 된 그는 모든 일의 우선을 학교에 두고 야간부 수업이 있는 오후 5시부터 오후 9시40분까지는 책에 몰두했다. 부족한 영어, 수학은 대학생 아들에게 과외를 받았고 중간·기말고사가 있을 때면 잠자는 시간을 쪼개 시험공부에 매달렸다.
"배우는 게 너무 좋아 교무실에 찾아가 2년제를 3년으로 늘려주거나 아예 1년 유급시켜 달라고 했다."며 "심지어는 방학을 좀 줄여달라고 생떼를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으로 서 씨는 2년 내내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성적표, 상장 등을 코팅해 집에 걸어둘 정도로 자랑스러워했다.
서 씨는 이번에 대구과학대 부동산학과에 전면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봄이 되면 어엿한 대학생이 될 그는 앞으로 부동산 경매·공매 분야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배움에 미련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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