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시평] '표절문화'의 극복을 위하여

입력 2007-02-21 09:35:28

'표절' 문제가 또다시 대학사회를 뒤흔들었다. 고려대학교 총장이 결국 물러난 것이다. 취임 56일만의 일이었다. 김병준부총리가 낙마한지 불과 6개월 만에 또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다. 한달 쯤 전에는 연세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마광수교수가 제자의 시를 표절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 일로 그는 오는 신학기 강의도 배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둘러보면 표절은 대학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요계와 문화계, 심지어는 언론계에서도 표절은 툭하면 문제가 되었다. 잇달아 터지는 표절 시비와 그로 인한 낙마 사건들을 보면, 마치 우리 사회가 '표절과의 전쟁'을 치르는 듯하다.

왜 이런 걸까? 표절의 사례가 과거보다 더 많아진 걸까? 그것이 아니라면 최근 '표절과의 전쟁'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의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는 '카피의 문화'와 '성장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사회였다. 그 중심엔 '모방을 통한 성장전략'이 자리하고 있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군사문화가 뒤를 받치고 있었다. 그 이데올로기의 선도 주창자는 국가였다. 기업뿐만 아니라, 학교와 문화예술계도 국가가 이끄는 '모방'과 '성장'의 대열에 동참했다. 윤리는 당연히 뒷전이었다. 베끼기와 따라하기를 통한 출세 경쟁이 온 세상을 지배했다.

교수들이 써낸 많은 책들 가운데는 베낀 책이 적지 않았다. 방송의 적지 않은 인기 프로그램들도 그랬다. 베끼기와 따라하기는 나름대로 효과를 봤다. 선진국의 관료와 기업인과 학자와 방송인들이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낸 정책과 기술과 저술과 작품을 베껴오는 것으로 손쉽게 그들을 턱밑까지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자랑해온 고도성장의 본질도 바로 그것이다.

표절과 베끼기에 따라붙던 양심의 가책도 고도성장론에 묻히고 말았다. 말하자면 표절과 베끼기는 그 시대의 지배적인 생존전략이요, 생활방식이요, 문화였던 것이다.

그 시대가 지금 저물고 있는 것이다. 표절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베끼기'가 아닌 '새 것 만들어내기'를 통해서 경제와 학문과 정책과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가지 않으면 안되는 발전단계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표절이 아닌 창작, 모방이 아닌 창의가 우리의 생존전략이요 생활방식이요 문화일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전환기의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표절과의 전쟁'은 역사의 전환기에 빚어지는 숱한 파열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전환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전환의 본질과 내용과 방향과 의미를 정확하게 통찰하는 것이다. 그 위에서 학문과 예술과 기술, 아니 모든 생활영역에서 표절을 배격하고 창의를 숭상하는 새 시대의 가치와 윤리를 함께 승인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표절과 베끼기를 부추기는 사회시스템을 청산하고 창의와 창작을 높이 평가하며 그것에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시스템을 세워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전환기는 종종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혼란과 진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 혼란과 진통을 어떻게 슬기롭게 수습하면서 새로운 사회로의 진입을 성공적으로 이룩해 내느냐 하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원칙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성찰과 청산은 새로운 시대를 건설한다는 역사적 사명의식에 의해 추동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되고 정략적 마녀사냥의 방식으로 추진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이제 각 분야에서 베끼기와 따라하기를 부끄럽게 여기는 신진의 기운과 주체가 나서서 새로운 가치기준과 사회시스템을 세워내야 할 것이다. 설령 과거 시대의 관행이었다 하더라도 표절로 업적을 늘려왔던 이들은 깊이 자숙하면서 새 시대를 열어가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최소한 새 시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욕심만큼은 버려야 할 것이다. 과거의 모든 관행들에 대해서 새 시대의 잣대로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새 시대를 여는 리더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다.

정략적 이해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일, 새 시대의 윤리와 사회시스템을 세워 내는 일이야말로 지금 학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인 것이다.

홍덕률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