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법관'이 되고싶다. 열일곱살짜리 고등학생의 꿈치고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 공부하는 것보다는 야구가 좋다. 법관이 고독한 직업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내가 내린 결정에 따라 게임이 뒤집히기도 하고 석궁을 들고 나오진 않더라도 거친 항의가 다반사라는 걸…"
올해 고3이 되는 김용일(운암고 2년) 군의 꿈은 법관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라운드에 나가 게임을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는 법정의 판사가 아니라 그라운드의 법관이 되고싶어한다. KBO(한국야구위원회)의 심판, 더 나아가 꿈의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의 심판 말이다. 그라운드에서 심판은 법관이자 곧 법이다.
그가 심판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야구를 너무 좋아하지만 현재로선 프로야구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이 멀다. 대신 프로야구심판이 되면 평생 야구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꿈을 조정한 셈이다. 의정부에서 대구로 전학온 그는 2~3년간 YMCA리틀야구단 활동을 했지만 매일 데리고 다니면서 뒷바라지하는 아빠가 너무 힘들어해서 야구를 포기했다.
그가 매일 보는 영화가 있다. 야구선수가 되려고 했지만 신체조건이 맞지않아 야구를 포기한 임창정은 의무경찰을 하다가 제대 후 프로야구 심판 강습을 받고 프로무대에 선다. 그 때 만난 배우 지망생 고소영과 풋풋한 사랑을 나눴다가 개막전 시구에 나선 고소영을 다시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결국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의 청춘드라마다. 프로야구 심판과 여배우와의 사랑이 이뤄진 것은 영화제목처럼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라고 할 정도로 드문 일이다.
김 군은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어한다. 어린 나이에 심판이 되고자 하는 그가 기특해 후원하고 있는 최종문(TBC 해설위원) 씨는 "KBO 심판이 되는 길은 쉽지않다. (심판이)되고 싶다고 해서 선수출신이 아닌 일반인은 정말 어렵다."면서도 "시대변화에 따라 KBO심판도 바뀌어야 하고 본인도 꿈을 포기하지않는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5년이 넘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에서 일반인이 심판이 된 것은 지난 2001년 딱 한사람이 있었다. 엄재국(35) 씨는 대한야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심판학교에 등록한 지 8년여 만에 83대1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심판원의 꿈을 이뤘다.
김 군은 지난 1월6일부터 28일까지 열린 KBO 대구심판학교에서 강습을 받았다. 그 이후 대구사회인야구리그 경기에서 심판 데뷔를 했다. 그의 첫번째 목표인 'KBO심판'이 되기위한 경력을 차근차근 쌓고 있는 셈이다. 올 겨울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KBO심판학교에 가서 경력을 쌓고 졸업 후에는 2~3년내에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세계적인 심판학교, '짐 에반스 심판학교'에도 갈 계획이다. 짐에반스 심판학교는 KBO심판위원회에서도 매년 심판재교육을 위해 심판들을 파견할 정도로 유명한 곳. 심판학교 강습을 통해 야구규칙을 제대로 배우고나서는 미국 마이너리그 심판으로 실전경험을 쌓고 싶어 한다.
"선수들이 항의하면 절대 받아줘서는 안돼요. 무시해야 돼요. 그러나 감독이 항의(어필)하면 간단하게 설명은 해줘요."라고 말한다.
최 위원은 "심판을 꿈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않고 심판이 되는 길은 멀다. 스트라이크 판정 하나 때문에 경기흐름이 바뀔 수도 있고 마음의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것도 경험해봐야 좋은 심판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에서는 한국에 비해 일반인이 심판이 되는 길이 가깝다. 메이저와 마이너리그 심판진의 40% 정도는 선수출신이고 60%가 일반인일 정도다. 캐나다교포출신인 국선경(25.여)씨도 심판학교 수료후 마이너리그 심판이 됐다.
174cm, 60kg. 야구선수는 고사하고 심판의 체격으로도 갸날퍼 보이는 몸매다. KBO심판이 되기까지는 갖춰야 할 것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가 가진 야구에 대한 꿈, 심판이 되겠다는 꿈은 소중하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그라운드로 나가 '스트~라이크!', '아웃!' 등의 콜사인을 외쳐댄다.
◆KBO 심판이 되는 길…심판학교 수료자 중 선발
현재 KBO 심판원은 36명. 1군경기는 5명, 2군은 3명이 한 조로 경기를 총괄한다. 1군의 경우 4개조가 126경기를 소화한다. 때문에 살인적인 체력이 요구된다. 이들 대부분은 10년이상 된 베테랑이다.
KBO 심판원 자격에 대해 KBO심판위원회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공인된 '심판자격증' 같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다만 KBO는 매년 12월에 개최하는 심판학교 수료자 중에서 성적우수자 약간명을 선발한다.
현재의 심판원은 모두 선수출신이다. 일반인은 한 명도 없다. 지난 2001년 선발된 엄재국 씨는 2년후 그만뒀다.사실 KBO 심판위원회는 선수출신을 우대하고 있다.
KBO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5년 4명의 심판원을 추가로 선발한 이후 아직까지는 새로 뽑은 심판원이 없다."고 밝혔다. 선발방식도 공개채용은 아니다. 그래서 야구계 일각에서는 KBO심판위원회의 폐쇄성이 변화되어야만 프로야구의 저변도 확대되고 발전할 수 있다며 심판원 선발방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심판원의 초봉은 대략 2천500만원 정도. 7천만원 이상 받는 심판원도 있다. 경력에 따라 계약조건이 다르다. 매년 계약을 맺는다. 경기수당 10만원씩도 받는다.
심판원은 야구를 잘 알아야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규칙 뿐 아니라 전체 경기흐름을 장악할 정도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공정하고 정확해야 하고 품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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