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그놈 목소리'

입력 2007-02-15 11:47:09

목소리가 멋진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적당한 윤기와 부드러움, 인간적 체취가 어울린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좋은 목소리, 매력적인 美聲(미성)의 소유자는 분명 축복받은 사람이다. 손가락 지문이 똑같지 않듯 목소리도 사람마다 다르다. 목소리의 무늬, 저마다의 독특한 결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여러 요소 중 목소리는 용모 못지않게 중요하다.

◇요즘 시중에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목소리가 있다. 바로 '그놈 목소리'다. 지난 1991년 유괴당한 지 44일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고 이형호 군 사건을 다룬 동명의 영화에 등장하는 실제 범인의 목소리다. 선입견만 없다면 그리 섬뜩한 목소리는 아니다. 다소 낮으면서 차분한, 지극히 평범한 목소리다. 그 점이 우리를 더욱 소름 돋게 만든다.

◇어쩌면 그자는 범인이라곤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 평범하고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잔인한 본모습을 가면 뒤에 철저하게 숨긴…. 전설적인 '지킬과 하이드' 이상의 두 얼굴일지도 모른다. 지난 1일 개봉된 영화 '그놈 목소리'는 벌써 240만 관객을 넘어섰다. 사상 최초로 '현상수배극'의 성격을 띤 이 영화의 제작진은 온라인 수사본부를 개설, 현상금 3천만 원을 내걸었다. 봇물처럼 들어오는 제보가 현재 약 200여 건. 이 중 18건은 경찰서에 전달됐다.

◇공소시효 15년이 이미 지난해 1월로 끝나버렸지만 제작진과 미아'실종가족찾기 등 시민단체들은 공소시효 폐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살인사건 공소시효는 15년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25년, 독일은 30년, 미국은 州(주)에 따라 공소시효 자체가 아예 없기도 하다. 유괴살인 등 반인륜 범죄는 가족 전체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사회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도 심대하다. 공소시효가 끝난 범인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을 걸 생각하면 참으로 모순이다.

◇대구의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화성 연쇄 살인사건 등 공소시효가 끝난 미제 사건들의 범인들도 거리를 활개치며 다닐지 모른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의가 산다. 국민적 공감대도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법은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한 공적 장치다. 법을 위한 법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법이 돼야 한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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