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윤성학 作 '내외'

입력 2007-02-14 07:24:28

내외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 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너무 멀지도/너무 가깝지도 않은" 관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거리. 흰 색과 검은 색의 중간색. 서늘하면서 뜨거운 관계. 그게 내연(內緣)의 관계일까, 내통(內通)의 관계일까. 눈이 밝은 사람에게는 보인다. "1㎝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이. 푸른 빛 풋고추가 붉은 빛 태양초로 이르기까지는 보랏빛의 단계를 거쳐야 된다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세상에는 푸른 고추와 붉은 고추 밖에 없다고 생각했지, 그 서툰 젊은 시절에는. 좌와 우, 중간색이 사라지고 있는 이 극단의 세상이 너무 두렵구나. 그런데 가만! "내외"란 저 제목은 '내외하다'란 말의 "내외"인가, '부부'란 말의 "내외"인가. 절묘하구나, 그 말의 "간극".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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