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L형에게
안나푸르나로 들어와 매일 일곱, 여덟 시간을 걷고 걸어 꼬박 일주일 만에 마낭에 닿았습니다. 마낭은 안나푸르나 사람들에게 샹그리라(香格里拉·shangrila, 이상향)로 불리는 곳입니다. 안나푸르나를 여행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곳에서 하루나 이틀을 쉬어갑니다. 표고가 3,000m를 넘는 곳이다 보니 고산병에 적응하기 위해서이지요.
사실 처음 마낭에 도착하고 나서는 왜 이곳이 샹그리라로 불리는 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진 길을 돌고 돌아 불현듯 언덕 위에 나타난 마을을 보고 사람들은 '언덕 저편'에 있다는 피안(彼岸)의 세계, 샹그리라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해서 가이드가 고도 조절을 위해 이틀을 쉬어야 한다고 말할 때까지도 머릿속은 온통 과연 안나푸르나를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동안 목표나 속도에 익숙해진 일상 탓에 어느새 안나푸르나를 여행하는 이유 자체를 잊어버리고 만 것이지요. 하지만 마낭이 샹그리라가 된 이유를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강가푸르나(Gangapurna 7,454m) 빙하가 만든 호수를 내려다보는 롯지(Lodge, 오두막)에 짐을 풀고 이른 저녁을 먹다가 포터 쪼루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친구와는 사실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걷는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힘이 들기도 했지만 쪼루도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앞장 서 갈 뿐 거의 말이 없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포터들은 짐을 끈으로 묶어 이마로 집니다. 짐의 무게를 이마로 버티는 것이지요.
네팔의 농촌 출신인 쪼루는 인도네시아에서 3년을 일하다 돌아왔습니다. 가난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이미 카투만두의 도시 빈민이 되어버린 네 동생들과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먼 이국을 택한 것이지요. 3년 중에 1년은 인도네시아로 가는 경비를 제하기 때문에 무임금으로 일을 했습니다. 고향에서 일을 하는 것이 낫긴 하지만 안정적이지 못한 포터보다는 외롭고 힘이 들더라도 좀 더 나은 임금 때문에 다시 외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한없이 쓸쓸해 보입니다. 문득 그의 맨발과 주름진 이마가 눈에 들어옵니다. 어린 동생들과 부모님을 위해 언제나 노동의 수고를 져야하는 그 친구가 가진 것은 빛바랜 표지의 영어회화 책뿐입니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부끄럽고 미안한 길이었습니다. 행여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득 채우고 만 배낭이 그에게 주었을 고통이 아팠습니다. 겨우 사진기 하나와 책 한권이 든 배낭조차도 힘들어 하면서 걸어온 길이 오히려 천근만근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생각은 비워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몸은 늘 편한 것에 익숙해져 있었고 입으로는 나누어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가지는 것에 젖어 있었습니다. 천박한 소유와 집착이 남을 부리는 어리석음의 업을 짓고 만 것입니다.
깊은 밤 내내 잠들지 못합니다. 불필요한 짐들을 정리하면서 비운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비운다는 것은 떠남에 있습니다. 떠나지 못하는 것은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욕망의 선을 긋고 적당히 통제하고 안주하면서 자신이 일상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여행자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샹그리라는 사람들에게 비운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웁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고서는 샹그리라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닌 우리를 만난 마낭은 샹그리라입니다.
아침 일찍, 강가푸르나 호수를 다녀옵니다.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비취색 호수는 아름답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석회암 때문에 늘 탁한 강물을 보았던 여행자에게 푸른 호수는 생경하기까지 합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에서 '물 수제비 뜨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자연스럽게 누구의 돌맹이가 더 멀리 물 위를 날아가는 지를 겨루다가 금새 친해집니다. 아이들과 여행자에게 언어의 소통이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어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들과 우체국을 갑니다. 마낭에 있는 작은 우체국은 안나푸르나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곳입니다. 환한 웃음으로 우표를 내어주던 아주머니가 숯불에 구운 감자 몇 개를 내어 옵니다. 여행자의 손과 입은 금방 까맣게 변하고 아이들은 연신 웃음을 터뜨립니다. 엽서는 당나귀의 등에 실려 여행자보다도 더 늦게 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엽서는 우체국 앞에 핀 꽃들의 향기와 아이들의 웃음과 여행자의 그리움을 잔뜩 안고 갈 것입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민속 박물관을 다니러 가다가 가는 빗줄기를 만납니다. 한 소녀가 우비를 들고 있습니다. 나무줄기를 엮어 만든 반달 모양의 천연 우비입니다. 자연이 준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 이 곳 사람들의 생활이 더욱 정겹습니다. 박물관은 아주 작은 이층짜리 건물로 일층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민가입니다. 이층 전시실에는 마낭 사람들의 생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돌아보는 데는 삼십분이 채 걸리지도 않았지만 전시실 한 쪽 편에 자리한 낡은 컴퓨터 앞에서 오락을 하고 있는 오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곳이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행여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떠올립니다. 꿈에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니다가 깨어 보니 자신이 나비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처럼 도대체 어느 것이 현실인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장자와 나비는 분명 별개의 것이고 지금 이 순간 여행자의 존재도 분명하지만 그 구별의 애매함을 느끼는 것은 마을을 가득 뒤덮은 불경을 적은 깃발, 룽다 때문일까요? 박물관을 나와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어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L형!
안나푸르나는 새들이 낮게 납니다. 설산의 높이가 너무 높아 힘겹기 때문인지 아니면 신들의 영역 앞에 자신을 낮추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보다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는 높이 나는 것도 멀리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더 높은 곳을 향하는 것과는 달리 말입니다.
세찬 바람이 습기를 머금은 듯싶더니 또 다시 빗방울이 긋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을 생각합니다. 얼마나 더 비워야 더 사랑할 수 있을까를 말입니다.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이런 물음을 끌어안고 뒹굴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부터는 정말 천천히 걸을 생각입니다. 아무런 의문 없이 샹그리라를 믿고 있는 이곳 사람들처럼 저 또한 그렇게 샹그리라를 만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마음에 있는 신에게 경배를 드린다는 뜻의 인사 "나마스떼"로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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