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서 48년 건어물 판매 노용철씨

입력 2007-02-10 16:15:30

몸사린 지갑 맘시린 명태

"명절 때만 되면 사람들은 그렇게도 막히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10시간이나 달려 왜 고향을 찾을까요?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만나 서로 정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설 풍속이 많이 바뀌겠지만 가족 간의 정을 확인하려는 마음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큰장'으로 잘 알려진 대구 서문시장에서 동일상회란 상호로 48년간 건어물 도·소매업을 하는 노용철(63·서문시장 건어물상인회장) 씨. 부친에 이어 2대째 서문시장에서 건어물 판매업을 하는 노 씨는 설 풍속이 많이 바뀌었지만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모습은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는 서문시장 건어물전은 설이 1주일 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대목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올 매출이 작년의 60%에 불과해요. 작년에는 유달리 장사가 안됐는데 거기에서 다시 40%가 줄었으니 '어렵다'는 푸념이 절로 나옵니다."

전반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탓이다. 서문시장 2지구에서 불이 나 생선 점포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생선과 건어물 간 '연계 효과'가 없어진 것도 매출하락의 원인이다. 생선을 사면서 건어물, 건어물을 사면서 생선을 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2지구 화재로 서문시장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건어물전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사가는 설 품목은 7가지. 백문어를 비롯해 낙지, 대구포, 가오리, 홍합, 명태, 오징어 등이다.

노 씨는 "예전에는 설 장을 보면서 건어물만 10만 원어치를 사는 경우도 있었으나 요즘은 크기가 작은 것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전반적으로 평균 구매금액이 3만 원 선"이라고 귀띔했다. 앞서 든 건어물 7가지를 구입할 경우 서문시장 건어물전에서는 대(大)자 기준으로는 7만, 8만 원, 중(中)자는 4만, 5만 원, 소(小)자는 2만, 3만 원이 든다는 게 노 씨의 얘기다.

노 씨는 삼천포에서 건어물을 가져와 칠성·팔달시장 등 대구는 물론 고령 등 경북에 도매로 공급하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파는 소매업도 같이하고 있다. "중간 유통 과정이 없다 보니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 다른 곳보다 30%가량 가격이 저렴하지요. 건어물의 품질은 두말하면 잔소리라 할 정도로 좋습니다." 건어물 경우 겨울에 비축한 것을 상품(上品)으로 치는데 노 씨는 이것만 취급한다.

건어물의 품질이 좋고, 가격도 싸다 보니 노 씨에겐 수십 년된 단골도 많다. "며느리였던 때부터 성주에서 일부러 서문시장까지 와 명절 장을 보는 어떤 분은 이젠 시어머니가 됐으면서도 직접 우리 가게를 찾아옵니다. 50, 60대부터 20, 3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지요." 단골고객이 수백 명에 이른다는 게 노 씨의 전언.

노 씨를 비롯해 100여 명에 이르는 서문시장 건어물전 상인 대부분은 요즘에 오전 4시쯤에 출근, 오후 8시에 퇴근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상인들의 수를 기준으로, 또 거래량을 기준으로 전국 최대 건어물전이란 명성을 지키기 위해 상인 모두가 새벽부터 밤늦도록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서문시장의 다른 지구들은 현대화 공사를 하기도 했지만 건어물전은 냉동고 설치에 따른 건폐율 조정이 쉽지 않아 아직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상인들의 연령도 50, 60대 중반 등 고령자들이 많다. 4년 전 건어물상인회 회장에 취임한 노 씨는 "불이 난 2지구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란다."며 "전자상거래 활성화와 함께 시장 현대화에도 힘을 쏟겠다."고 했다.

설 풍속은 바뀌고 있지만 노 씨는 설은 설다워야 한다고 했다. "어려움을 겪는 재래시장을 시민들께서 많이 찾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서로를 위한 마음이 있다면 설은 앞으로도 훈훈한 명절로 남을 겁니다."

◇ 달라진 설 장보기

요즘의 설 풍경은 1970, 80년대에 비해 '확' 달라졌다는 게 서문시장 상인들의 이구동성. 먹는 것, 입는 것이 풍족해지고 명절에 대한 인식이 옅어지면서 설 풍경이 크게 바뀌었다는 얘기다.

▶최태경(48) 서문시장상가연합회장=70년대만 해도 설을 앞두고 가족 모두가 손을 잡고 서문시장 등 재래시장을 찾아 '설빔'을 맞추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설빔을 맞추러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평소에 자녀들의 옷을 사줄 정도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진 때문인 것 같다. 정겨운 설 분위기가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성곤(55) 서문시장 2지구 지하층 전 회장=생선 같은 경우 구입하는 양과 개수가 크게 줄었다. 예전에는 한집안에서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돔배기를 장만하기 위해 상어 1마리를 통째 사는 경우도 있었고 2, 3kg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500g에서 1kg이 고작이다. 조기도 5~7마리에서 1, 2마리로 크게 줄었다. 설에 가족과 친척들이 흥겹게 음식을 나눠먹는 풍속이 점차 없어지면서 제수용품 구매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정진식(48) 서문시장 상가연합회 부회장=서문시장에서 27, 28년 장사를 했는데 요즘에는 설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이 없어졌다. 예전에는 명절 대목장사로 반 년을 먹고 산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옛날 얘기가 됐다. 설 대목이 점점 없어지다 보니 설을 앞두고서도 대부분 상인들의 마음은 심드렁하다. 설 대목이 다가왔지만 예전과 같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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