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친정어머니의 가스중독

입력 2007-02-10 07:07:52

지금도 소방도로를 지나다 보면 큰 연탄차에서 내려놓은 검은 연탄을 볼 수 있다. 주문받은 집에 배달하기 위해 임시로 연탄을 쌓아 놓은 것으로 보인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 연탄을 바라볼 때면 25년 전 연탄가스 중독사건이 떠오른다.

그해 늦가을 김장을 담가 달라고 친정에 전화를 했더니 우리 집으로 친정어머니가 오셨다. 그날 밤, 작은 방에서 함께 자던 큰아이가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엄마! 외할머니가 이상해." 남편과 함께 달려가 보니 어머니는 의식이 없었고 입에서는 노란 거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편은 축 늘어진 어머니를 업고 골목길을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의식이 돌아왔다. 안도의 숨을 쉬고 보니 남편은 내복바람이고 나는 맨발이었다. 또 급히 병원에 실어다 준 택시기사 아저씨는 차비도 받지 않고 돌아간 후였다. 연탄가스중독이라는 의사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집에 돌아와 보니 초저녁에 갈아 넣은 연탄이 푸른 불빛을 휘날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하마터면 딸네 집에 오셨다가 저 세상으로 가실 뻔했던 어머니는 지금 96세이시며 "내 걱정은 말아라. 나는 잘 지낸다."하시며 오늘도 전화를 받으신다. 검은 연탄 속에는 지나온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져 있다. 긴 세월을 함께 해온 연탄은 지금도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며 따뜻한 아랫목을 지켜주고 있다.

김순희(대구시 남구 이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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